북한이 노동당 창건 77주년(10일)을 하루 앞둔 9일 새벽 동해상으로 초대형 방사포(KN-25)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했다.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이 한반도로 뱃머리를 돌려 한·미·일 훈련 등을 실시한 데 대한 반발이자 언제, 어디서든 마음대로 핵 타격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지난 2019년 1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관 하에 발사한 초대형 방사포. 차륜형 이동식발사대(TEL) 위 4개의 발사관 중 1개에서 발사체가 화염을 뿜으며 치솟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합동참모본부는 “9일 오전 1시 48분쯤부터 1시 58분쯤까지 북한 강원도 문천(원산 북쪽)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번 미사일은 비행 거리 약 350㎞, 최대 고도 약 90㎞, 속도 약 마하 5(음속 5배)로 탐지됐다. 군 당국은 비행 거리와 고도 등 제원으로 볼 때 최근 북한이 몇 차례 발사한 초대형 방사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초대형 방사포는 세계에서 가장 직경이 큰 다연장 로켓(600㎜)으로, 크기와 비행 특성이 탄도미사일과 비슷해 탄도미사일로도 분류된다. 일본 일각에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일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군 당국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도발은 전날 북한 국방성 대변인이 레이건함 동해 재진입을 두고 “군사적 허세”라며 “매우 우려스러운 현 사태에 대해 엄중히 보고 있다”고 밝힌 지 약 15시간 만이다.

북한이 이날 미사일을 쏜 강원도 문천은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2020년 4월 단거리 순항미사일 발사를 제외하면 탄도미사일을 쏜 적은 없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6일에는 평양 삼석 일대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쐈는데, 이곳도 평양의 통상적 미사일 발사 장소인 순안비행장과 거리가 있는 곳이다. 이는 북한이 발사 시간과 장소를 다양하게 선택하는 ‘맞춤형 기습 발사’를 통해 한미 대북 감시망의 허점을 뚫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군 당국은 북한이 올 들어 처음으로 휴일 심야 시간대에 미사일을 쏜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보통 북한은 오전 6~7시 등 이른 오전 시간에 미사일을 발사해왔다. 워싱턴 오후 시간대를 겨냥한 도발로 풀이됐다. 하지만 지난달 28일엔 오후 6시 10분, 29일엔 오후 8시 48분 등 우리 정부 및 군 관계자들의 퇴근 시간으로 감시가 취약한 시간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9일 새벽 동해상으로 초대형 방사포(KN-25)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했다. 사진은 북한이 과거 KN-25 초대형 방사포를 시험 발사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군인 휴무일인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처음으로 미사일을 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합참 작전 분야 관계자들은 물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 안보 참모들과 이종섭 국방장관·김승겸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들이 휴일, 밤낮 없이 긴급회의를 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휴일, 새벽 등을 가리지 않고 미사일을 쏘는 것은 한미 연합 대비 태세를 떠보는 것은 물론 한국군과 정부 당국에 피로감을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이 ‘전천후 도발’을 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2017년 상황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북한은 중거리 미사일(화성-12형), ICBM(화성-14형 및 화성-15형) 발사로 도발 수위를 높여가면서 휴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사일을 쐈었다. 2017년 7월엔 북한이 밤 11시 41분에 화성-14형 ICBM을 발사하자 2시간 뒤인 새벽 1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NSC 전체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미사일 발사로 지난달 25일 이후 북한이 쏜 미사일은 7차례에 걸쳐 12발로 늘어났다. 북한이 올 들어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23차례, 순항미사일은 2차례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사일 발사로만 보면 11번째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북한의 과잉 도발은 허약한 북한 경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