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현재 정부가 재량으로 하고 있는 ‘쌀 시장 격리’(남는 쌀 매입)를 매년 의무적으로 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다. 쌀 시장 격리는 국내 수요보다 많이 생산돼 남아도는 쌀을 농협이 사들이고, 농협이 쌀을 사는 데 쓴 돈을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제도다.

현재는 정부가 쌀 시장 격리를 실시할지 자체적으로 판단하도록 돼 있다. 민주당 법안은 정부의 재량권을 없애고, 쌀 초과 생산분이 나오는 대로 농협이 무조건 전부 사들이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또 현재는 쌀 추수철이 지난 뒤에 시장 격리를 할 경우 최저가를 제시한 농민의 쌀부터 사들이도록 돼 있는데, 민주당 법안은 추수철에 곧바로 ‘시장 가격’으로 사들이도록 했다. 지금보다 비싼 값을 주고 사들이라는 의미다. 쌀값을 세금으로 떠받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을 뿐, 민주당 법안을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도 대선 당시 쌀 재배 농가 표를 의식해 쌀 시장 격리 확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문재인 정부에 쌀 20만t을 추가로 사들이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문제는 쌀 시장 격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확한 쌀 가운데 37만t을 올해 8월까지 사들이는 데만 7900억원이 들어갔다. 또 매년 쌀이 남아돌고 있어 사들인 쌀을 되팔아 매입 자금을 회수하기도 어렵다. 매입가의 10분의 1 수준에 사료용으로 매각하는 경우도 있다. 보관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다. 쌀 1만t을 2년 보관하는 데 229억원가량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사들인 37만t을 2년 보관하는 데에만 8473억원이 드는 것이다. 민주당 법안이 통과돼 쌀 시장 격리 규모가 확대되면 매년 쌀 매입과 보관에 조 단위 세금이 들어갈 수 있다.

쌀 시장 격리가 식량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은 매년 20만t 이상 남지만 콩이나 밀 등의 공급은 부족한데,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계속 사주면 농민들이 쌀 외에 다른 품목을 재배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쌀을 제외한 다른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는 데 쌀 시장 격리가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쌀 시장 격리를 법으로 의무화하면 국제적으로는 정부가 ‘농업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나 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