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파악하려면 용산보다 여의도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정부 부처 고위직 인사나 국정 운영과 관련한 윤 대통령 구상을 대통령실 참모들보다 이른바 ‘윤핵관’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윤핵관들이 대통령실 참모들보다 윤 대통령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받은 ‘내부 총질’ 문자메시지를 지난달 26일 노출한 사건 이후 윤핵관의 기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반면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오히려 장악력이 세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핵관 그룹에서 먼저 ‘위기’를 맞은 건 권성동 원내대표다. ‘내부 총질’ 문자 노출 이틀 만에 윤 대통령이 권 원내대표와 행사 참석을 위해 전용기에서 만나 나눈 대화가 여당발(發)로 ‘고생했다’는 취지로 보도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시 권 원내대표 재신임을 한 것처럼 보도되면서 윤 대통령이 상당히 불쾌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결국 권 원내대표는 당대표 직무대행직을 내려놔야 했고, 원내대표직 사퇴론까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권 원내대표 발언권이나 영향력이 위축된 상황”이라고 했다.

장제원 의원에 대해서도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근 대통령실은 일부 행정관에 대한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과거 장 의원실에서 근무했거나 지난 대선 때 캠프에서 장 의원을 보좌하다 대통령실에 들어온 행정관 여럿도 최근 사직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대통령실의 장 의원 견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장 의원은 윤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맡아 내각과 대통령실 인선에서 중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여권 관계자는 “윤핵관 그룹에서 김대기 비서실장 교체 등을 강하게 제기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대통령실 일부 참모 그룹에서 윤핵관 견제 움직임이 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통령실 개편을 두고 윤 대통령의 정치권 측근 그룹과 대통령실 참모 그룹 간에 이견이 생기자 윤 대통령이 정리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얘기다.

권 원내대표와 장 의원 간에 균열이 발생한 것도 친윤(親尹) 그룹 위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친윤계 의원은 “권성동·장제원 두 사람이 서로 연락도 하지 않은 지 꽤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로를 ‘브러더(형제)’라 부르는 두 사람은 지난 대선 캠페인 때부터 친윤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달엔 국민의힘 지도 체제 방향을 두고 이견을 보였고 대통령실 직원 채용 논란을 두고 충돌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김대기 비서실장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실장은 지난 18일 대통령실 개편 방향을 직접 브리핑했고, 사흘 뒤인 21일에도 브리핑룸을 찾아 신임 수석비서관 인선을 발표했다. 김 실장은 얼마 전까지 언론 노출을 꺼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김 실장에게 힘을 실어줬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은 윤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넘기면서 당무(黨務)와 국정(國政) 운영을 분리해 관리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윤핵관들의 퇴조라기보다 이들의 전략적 숨 고르기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여권 관계자는 “윤핵관들이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차기 전당대회 국면이 본격화하면 가시적 움직임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 이준석 전 당대표가 연일 윤핵관을 저격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후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실제 장 의원 등 친윤계 의원들은 자주 모임을 하며 결속력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주요 국면마다 여전히 장 의원을 찾고 있고 정기국회를 앞둔 상황에서 권 원내대표와도 정국 구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