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미국 국가 의전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 연방 하원의장이 3일 한국에 입국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첫 여름휴가를 이유로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여당이 윤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하고, 야당은 이번 결정을 옹호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4일 오전 페이스북에서 “동맹국인 미 의회의 1인자, 워싱턴 권력에서는 사실상 2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이 하원의장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유 전 의원은 “대학로 연극을 보고 뒤풀이까지 하면서 미 의회 대표를 만나지 않는 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며 “한미동맹을 강조했던 새 정부 초반부터 오락가락 외교는 우리 국가 이익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전날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함께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뒤풀이를 통해 연극계 의견을 청취한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도 전날 YTN 방송에 출연해 “휴가 기간에 왔더라도 다 만나는게 제가 볼 때는 일반적인 외교의 관례라 생각한다”며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7월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셰이크 나세르 당시 쿠웨이트 총리 면담 요청에 휴가 기간을 일주일에서 닷새로 줄인 것도 회자되고 있다.

반면 야권에서는 결이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펠로시 의장 순방으로 동북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직접 만나지 않는 것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을 적절한 행보라는 것이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펠로시를 만나는 것은 미·중 갈등에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을 칭찬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교수도 “대만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안 만나는 걸로 생각이 된다”며 “안 만나는게 결과적으로는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 안 만난다고 했다가 다시 만남을 조율 중이라고 하더니 또 만날일이 없다고 번복했다”며 “아마추어들의 창피한 국정 운영”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해 “중국의 압박도 없었고, 미국 측에 ‘하계 휴가’라는 점을 양해를 구했고, 미국도 충분히 이해했다”는 입장이다. 펠로시 의장 방한(訪韓)의 중요성과 의의는 인정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휴가까지 희생해가며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얘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