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상관없이, 내게 닥친 모든 순간에 집중했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마주해야 하는 것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다른 모든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죠.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이자 10대 딸 둘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8년을 지낸 비결입니다.”

ALC/ 미셸 오바마 전 미국 퍼스트레이디가 2022년 7월 13일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화상으로 손지애 전 CNN 서울지국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박상훈 기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58) 여사는 13일 제13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의 온라인 대담을 통해 백악관에서의 삶을 진솔히 나눴다. 젊은이에게 “학벌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날 대담은 손지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가 진행했다.

오바마 여사는 백악관 생활을 회상하며 “아침에는 총기 난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만나 손을 부여잡고 울다가도 밤이 되면 백악관 잔디밭에서 파티가 열리는 삶을 살아내야 했다”며 “미국은 대통령과 나를, 두 딸 역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일상과 바위로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을 버텨낸 비결로 그는 “이성(理性)과 차분함”을 꼽았다. “우리는 ‘스트롱맨(권위주의적 지도자)’에게 열광할 때가 많지만, 정작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지도자의 이성과 차분함입니다. 폭풍의 눈 한가운데서도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문제에 집중할 수 있고 최선의 대응을 할 수 있어요.”

그는 백악관에서 10대 자녀를 키운 경험을 이야기할 때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당시 첫째 딸 사샤와 둘째 딸 말리아는 각각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생이었다. 그는 “아이들은 우리가 다른 부모처럼 학부모 회의나 학교 행사에 참석하길 바랐다. 우리가 학교에 방문할 때마다 대통령 행렬 자동차 20대가 함께 출동했기 때문에 너무 창피해했고, 결국 아빠한테 학교 운동 경기에 오지 말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와 기업 변호사와 대학병원 부사장으로 일한 오바마 여사는 1964년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아프리카계 흑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이들은 학벌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며 “젊은 사람 면접을 볼 때 출신 학교나 경력보다는 조부모에 대해 갖고 있는 추억, 형제자매와의 관계, 힘들 때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등을 우선 묻는다”고 했다. 자서전 ‘비커밍’에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던 그는 “내 책을 읽고서 많은 여성은 내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참석한 파티보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애들을 키우는 경험에 공감했다”며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없애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우리는 연대할 수 있고, 긍정적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훌륭하게 키우면서 최고의 경력도 갖고 젊을 때 돈도 많이 벌기를 바라는 젊은 사람들을 요즘 많이 본다”며 “모든 걸 한 번에 다 가지려고 자신을 소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과를 통째로 삼키지 말고 한입 물어서 꼭꼭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긴 뒤, 그 다음 한입을 또 무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여사는 2017년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58%)의 지지율보다 10%포인트 높은 68%를 받았다. 미국 언론은 최근 그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고 있다. 정작 그는 “나는 정치를 좋아한 적이 없다”며 정계 진출을 부인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 열정을 갖고 있는 일이 제 영혼과 정신에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그것을 헷갈려 합니다. 지금 제 역할은 다음 세대 지도자에게 길을 만들어주고 이들이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