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청사 앞에 설치된 원훈석.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손글씨를 본뜬‘신영복체’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는 원훈이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고(故) 신영복(1941~2016) 성공회대 교수 서체로 된 원훈석(院訓石) 교체와 새로운 원훈 선정을 위한 내부 여론 수렴에 착수할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지금의 원훈석은 국가 정체성과 충돌한다는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의 지적이 있다”며 “내부 여론 수렴을 걸쳐 곧 교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지난달 25일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신 교수의 친북(親北) 성향과 이적(利敵) 전력을 지적하는 여당 의원에게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해 6월 국정원 창설 60주년을 맞아 박지원 전 원장 주도로 세운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 원훈석을 들어내겠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원훈석 교체 절차에 착수한 것은 간첩 혐의를 받았던 신 교수의 생전 글씨를 본따 만든 이른바 ‘어깨동무체’로 된 원훈석이 “대북 정보 활동을 주로 하는 국정원 원훈 서체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1968년 북한 연계 지하당 조직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간 복역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988년 특별 가석방됐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이 평소 존경하는 사상가로 꼽아왔다.

이 때문에 대통령직인수위 때부터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모임’ 등이 윤 대통령 측에 원훈석 교체를 수차례 요구했고, 시민 단체들이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시위를 열기도 했다. 시민 단체 대안연대 민경우 상임대표는 “원훈석은 국정원의 역할·임무·염원을 집약적으로 담은 것인데 그런 상징물이 통혁당 관련자 글씨로 된 것은 나라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했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국보법 위반으로 복역한 사람이 국정원의 상징이 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자기 모순적인 부조리극”이라는 직원들 반발이 컸다고 한다.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는 “반란이 일어날 지경”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새 원훈 선정과 원훈석 제막은 교체 방침이 확정된 이후 진행될 방침이다. 이 사안에 밝은 한 인사는 “여론 수렴에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원훈에 대해선 “정보기관의 유능함과 정보 요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것이 새 원훈 콘셉트”라고 했다. 국정원 원훈은 그동안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정보는 곧 국력이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등으로 바뀌어왔다.

대통령실은 또 문재인 정부 때 경찰 등 공공 기관에서 두루 쓰인 어깨동무체를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사무실마다 걸려 있는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떼어내는 방안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