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북한군이 살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배우자가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 북한군에게 살해되고도 ‘월북자’ 낙인이 찍혔던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아들 이모씨가 17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쓴 편지를 보냈다.

유족의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이날 이씨가 윤 대통령에게 쓴 감사편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씨는 아버지 피살 당시 고등학생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아버지는 월북한 것이 아니다’는 편지를 썼다. 현재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아버지의 사망 발표를 시작으로 죽음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1년 9개월을 보냈다”며 “긴 시간 동안 전(前) 정부를 상대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맞서는 과정에서 수없이 좌절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음을 부끄럽지만 고백한다”고 했다.

이씨는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는 월북자로 낙인찍혔고 저와 어머니, 동생은 월북자 가족이 되어야 했다”며 “고통스러웠고 원망스러웠으며 분노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도 잃고, 꿈도 잃었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또래 친구들이 누릴 수 있는 스무 살의 봄날도 제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며 “아버지의 월북자 낙인을 혹시 주변에서 알게 될까 봐 아무 일 없는 평범한 가정인 척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월북자가 아니다’는 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들어주신 윤 대통령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 1월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제게 꿈이 있으면 그대로 진행하라고 해주셨던 말씀이 너무 따뜻했고 진실이 곧 규명될 테니 잘 견뎌주기 바란다는 말씀에 다시 용기가 났다”며 “제가 듣고 싶었던 건 따뜻한 이 한마디였고 지켜지는 어른들의 약속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대통령님, 제 아버지 성함은 이 대자 준자, 이대준입니다”라며 “그리고 제 아버지는 월북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세상에 대고 떳떳하게 아버지 이름을 밝히고 월북자가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며 “대통령님 덕분에 이제야 해본다”고 했다.

이씨는 생전 아버지에 대해 “똑같이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었다”며 “태극기를 직접 사오고 국경일마다 일찍 일어나 직접 국기를 게양하는 애국심 있는 분이셨다”고 했다. 또 “물에 빠진 어민을 구해 표창장도 받으셨지만 정작 아버지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 순간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셨다”고 했다.

2020년 9월 북한군이 살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 중 일부. /김기윤 변호사 제공

이씨는 “오히려 아버지를 월북자로 만들어 그 죽음의 책임이 정부에 있지 않다는 말로 무참히 짓밟았고, ‘직접 챙기겠다’ ‘늘 함께하겠다’는 거짓 편지 한 장 손에 쥐여주고 남겨진 가족까지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 전 정부였다”며 “하지만 이제는 이런 원망도 분노도 씻으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럴 수 있도록 대통령님께서 도와주셨기에 저는 이제 제 위치로 돌아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씨는 “아버지의 오명이 벗겨지는 기사를 보면서 그 기쁨도 물론 컸지만 전 정부, 전 대통령께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혹시나 또다시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래서인지 대통령님께서 저와의 약속을 지켜주신 부분이 더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이씨는 이날이 20살을 맞는 생일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슬픈 생일이지만 오늘만큼은 대통령님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제게 큰 선물을 보내신 것 같아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씨는 “얼마 전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동생을 잘 다독이고, 어머니께 힘이 되는 아들이 되겠다”며 “이 힘겨움을 끝까지 함께 해주고 계신 큰아버지와 김 변호사님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는 바른 인성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해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윤 대통령에게는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함께 걸어가시는 국민의 대통령으로 남으시길 바라며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해양경찰청과 국방부는 전날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단정할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2년 전의 발표를 뒤집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경을 포함한 우리 정부는 당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인 결과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며 “보안이 생명인 안보 관련 정보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왜곡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이는 국가적 자해 행위”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