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3일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발의 예고한 ‘시행령·시행규칙 통제 법안’에 대해 “(국회가) 시행령에 대해 수정 요구권을 갖는 것은 위헌 소지가 좀 많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행정 입법으로 불리는 시행령·시행규칙에 국회가 수정 권한을 갖는 쪽으로 법 개정이 추진되는 데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는 물음에 “시행령 내용이 법률 취지에 반하거나 법률 효력에 위배된다면 국회에서 법률을 더 구체화하거나 개정해서 (해당 시행령을) 무효화시킬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국회가 시행령 등에 손을 댈 게 아니라, 문제가 있다면 모법(母法)을 고치면 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그런 방식으로 가는 거면 모르겠지만, 시행령이라는 건 대통령이 정하는 것”이라며 “시행령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헌법에 정해진 방식과 절차를 따르면 된다”고 했다. 민주당이 현재 알려진 내용대로 법안을 발의해 밀어붙일 경우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활짝 웃는 국민의힘 지도부 - 국민의힘 이준석(오른쪽)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6·1 지방선거 호남 당선자 축하행사에 참석해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국민의힘도 관련 법안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통제 시도이자 ‘다수당의 반헌법 폭거’라고 거듭 비판했다. 이준석 대표는 “대통령 출범 초기부터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국민들이 냉혹한 평가를 할 것”이라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회를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시켜 놓고, 야당이 되자 행정부 통제를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며 “지난 대선 때 ‘식물 대통령’ 운운한 것처럼 새 정부 발목을 잡겠다는 건데, 부디 이성을 찾고 민심을 직시하기 바란다”고 했다.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국회라는 이름을 내세워 제1당인 민주당이 행정 권한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은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다수당 폭거”라고 했다.

국회 안팎에서는 “시행령을 적극 활용한 건 정작 문재인 정부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는 ‘100대 국정 과제’를 설정하면서 “시행령 개정만으로 이행 가능한 국정 과제를 적극 발굴해 연내 완료하겠다”고 했었다. 당시 국회가 여소야대여서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은 상황을 감안해, 시행령 개정으로 우회해 ‘속도전’을 폈던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설치된 일자리위원회는 일반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근거해 설치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상당수 운용 지침을 시행령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시행령 개정은 문재인 정부 전문 분야였다”며 “민주당이 하면 개혁 속도전, 국민의힘이 하면 ‘국회 무시’라는 논리가 놀랍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조 의원이 발의 예고한 법안은 당 차원의 법안이 아니라고 했다. 신현영 대변인은 이날 당 비상대책위 회의 뒤 브리핑에서 “비대위 내에서 공식 논의는 없었다”며 “아직까지는 개인 의원의 법안이고, 발의가 되면 검토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신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서도 “아직 발의되지 않은 법안을 가지고 대통령이 먼저 발언을 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고, 권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원내 지도부와 당 정책위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조 의원 법안 내용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이 만든 법과 충돌하는 시행령 제정을 추진할 경우 이를 막을 최소한의 견제 수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다들 하고 있다”며 “대다수 의원이 동의하면 당 차원에서 법안 통과를 추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향후 조 의원 법안이 당론으로 채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이번 법 개정이 한동훈 법무장관의 ‘검수완박 무력화’ 시도 가능성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검수완박법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면서 “상위법 우선 원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조 의원은 이날 법안 작성을 완료하고 함께 발의할 의원을 모으는 중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