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국민청원 답변 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국민청원에 직접 답변하는 것은 지난해 8월 19일 이후 두 번째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열흘을 앞두고 신구 권력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일 공개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비판하는가 하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도 퇴임 직전 국무회의를 열어 공포할 예정이다. 여기에다 인수위원회가 새 정부 출범 직후인 5월 말 마스크 해제를 요청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다음 주 실외 마스크 해제를 결정했다. 야권에선 “권력의 뒤끝이 대단하다”는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29일 집무실 이전 반대 국민 청원에 직접 답하면서 “차기 정부가 꼭 고집한다면, 물러나는 정부로서는 혼란을 더 키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직접 만난 뒤 집무실 이전 예산 집행이 이뤄지며 이 문제는 해결되는 듯했으나, 문 대통령은 최근 손석희씨와의 대담 등에서 계속해서 윤 당선인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청와대는 구중궁궐이 아니다”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가 전체적으로 계속해서 개방이 확대되고 열린 청와대로 나아가는 역사였다”며 “우리 정부에서도 청와대 앞길이 개방됐고, 인왕산과 북악산이 전면 개방됐으며, 많은 국민이 청와대 경내를 관람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못 지킨 청와대 폐지를 윤 당선인이 이행하는 것이 그렇게 배가 아프냐”고 비판했다.

여기에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온갖 꼼수를 쓰면서 강행 추진 중인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서도 민주당 편을 들어주고 있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본회의를 개최하고 해당 법안을 통과시킨 뒤 빠르면 5월 3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이를 공포해달라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처음에는 검수완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이 나온 뒤에는 “의회 민주주의의 결과”라며 사실상 지지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며 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지금은 거부권을 행사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권 원내대표도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정부가 29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도 신구 권력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지금 현 정부의 실적으로 실외 마스크 해제를 하겠다고 발표한 건 너무 좀 성급한 판단”이라며 “오히려 현 정부의 공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앞서 5월 말에 ‘실외 마스크 프리’ 선언을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인수위도 정치적 결정이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정부와 청와대는 “우리는 시스템과 로드맵대로 결정한 것”이라며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방역 지침은 방역전략회의, 일상회복위원회 등의 회의 시스템을 거치며 결정되는 것”이라며 “현 정부의 방역 시스템을 존중해줘야지 어떤 근거를 대면서 지금은 안 되고 한 달 뒤에는 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마스크 해제 결정 회의 때 일부 “인수위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공개 발언을 더 자주하고 있다. 이날도 군 주요 직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하면서 “우리 정부 5년 동안 우리는 단 한 건도 북한과 군사적 충돌이 없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이어 두 번째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대 과거 정부에서 천안함 연평도 목함지뢰 같은 여러 군사 충돌이 있었고 그거 때문에 전쟁 위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아주 소중한 성과”라고 했다. 올해 들어 북한이 십수 차례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은 최근 퇴임을 이유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서를 주고받으며 도발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하지 않고 대화만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20~22일 윤석열 당선인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도 만남을 추진 중이다. 청와대는 “임기 말 없는 대통령으로 끝까지 일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40% 지지율이라는 무기를 들고서 후임자에 대한 예우를 전혀 해주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