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후보자 중 대기업 사외이사 출신 후보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억원 안팎 보수를 받으며 기업 경영을 감시·조언하는 사외이사 출신들이 유예 기간 없이 공직에 직행하면서 이해 충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5~26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열리는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황근 농림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후보자

새 정부 총리·장관 후보자 19명 중 대기업 사외이사 출신은 7명(36.8%)이다. 한 후보자는 지난해 3월 에쓰오일 사외이사로 선임돼 이사회 의장까지 지냈다. 총리 지명 직후인 지난 4일 에쓰오일은 한 후보자의 퇴임 소식을 공시했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롯데GRS)▲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신세계인터내셔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AK홀딩스, ENF테크놀로지) ▲한화진 환경부 장관(삼성전자) 등 장관 후보자 6명도 지명 시점까지 사외이사를 지내고 있었다.

사외이사제는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기업 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투자자 이익 보호 등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사외이사는 외부에서 영입돼 독립성을 보장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이사로, 경영진에 속하는 사내이사와 구별된다. 하지만 국내에선 사외이사들의 안건 찬성률이 100%에 육박해 해마다 ‘거수기’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삼성전자(1억5000만원), SK하이닉스(1억1700만원), LG전자(9700만원) 등 국내 대기업들은 한 달에 한 번 회의 출석하는 대가로 사외이사에게 매년 1억원이 넘는 보수를 지급한다. 대기업 회장이나 최고 경영진과의 골프 회동, 기업 소유 리조트·고급 호텔에서의 워크숍, 건강 검진 같은 유·무형 혜택들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그룹 고위 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갈수록 커지는 사외이사 권한에 비례해 사외이사에게 쏟는 정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외이사를 두고 ‘최고의 부업’ ‘은퇴 후 최고 일자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에 사외이사 출신이 다수 지명되면서 이해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던 이들이 공직에 직행해 기업 관련 정책을 펼 때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와 일본계 기업 TCK 사외이사를 지냈다. 이 후보자는 이 기간 이사회에 올라온 285개 안건 중 284개 안건에 찬성했고, 보수로는 총 7억8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LG디스플레이에서는 3년 임기(2019년 4월~2022년 3월)를 마치고 올해 재선임됐는데, 재선임 시점이 경제2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 중이던 지난달 23일이었다. 기업 관련 사안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새 정부의 산업 정책을 다루는 자리여서 이해 상충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19일 기자들과 만나 “경영대 교수가 기업 경영에 관해 아는 것은 교육·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사외이사와 장관직 수행은 완전히 별개”라고 해명했다.

사외이사 경력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달 말 시작되는 청문 정국에서 사외이사 문제가 뇌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당 회의에서 “거수기 사외이사로 8억원이나 챙긴 장관 후보, 최소한의 도덕성 검증도 없이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지뢰 장관 후보들이 아닐 수 없다”며 사외이사 문제 쟁점화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