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광복회장은 1일 보도 자료를 내고 “한국인을 개무시한 맥아더 포고령을 비판해야지 포고령 내용을 밝힌 김 회장을 비난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김 회장은 “반민족 기득권 세력에겐 맥아더가 ‘은인’”이라며 “그들에겐 맥아더의 포고문이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양주백석고 학생들에게 보낸 영상 강연에서 광복 이후 북한에 진입한 소련은 해방군이고 남한에 들어온 미국은 점령군이라는 취지로 언급해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김원웅(왼쪽에서 둘째) 광복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역사정의실천인상’수상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자신을 강연에 초청했거나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여권 인사들에게 상을 남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광복회

◇맥아더 포고문 내용 일부 누락해 왜곡

김 회장은 당시 고교생 상대 강연에서 “맥아더 장군이 남한을 점령하면서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내 말을 안 들을 경우에는 군법회의에 회부해서 처벌하겠다. 모든 공용어는 영어다’라는 포고문을 곳곳에 붙였다”고 했다. 이어 “맥아더 장군이 미국에 보낸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남한을 일본에 이어서 미국의 실질적인 식민지로 써야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의 포고문에 대해서는 ‘조선인이 독립과 자유를 되찾은 것을 축하드린다. 조선인의 운명은 향후 조선인이 하기에 달렸다. 조선 해방 만세’라고 쓰여 있었다고 김 회장은 밝혔다. 그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지내며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보고서를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다”고도 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당시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을 보면,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맥아더군이) 명심하고” “(조선)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는 문장이 바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김 회장은 이런 내용을 누락한 것이다.

정치권과 학계에선 김 회장이 반미 의식을 조장하고 소련군을 미화하는 주장을 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는 더는 침묵하지 말고 김 회장을 즉각 파면하라”고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망언이 도를 넘어 막장 수준”이라고 했고,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최근 불거진 김 회장 모친의 독립 운동 진위 논란을 거론하며 “가짜 독립유공자 지위를 이용해 온갖 갑질을 해대는 자들을 색출하고, 민족 반역자로서 영구히 이 땅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황기철 국가보훈처장도 김 회장 발언에 대해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더욱이 고등학생들한테 그렇게 발언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유감”이라고 했다. 황 처장은 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 김 회장 발언에 대해 “광복회에 사실 내용을 파악해 우려를 표명하든지 다른 방법이 있으면 강구해서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여권이나 강연 초청 주체에 광복회 명의 賞 남발

한편 김 회장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친일 잔재 청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기 양주백석고 역사 교사에게 ‘역사정의실천 교육인상’을 지난달 30일 수여했다. 해당 교사는 김 회장 영상 강연 등 학생들의 ‘친일 청산’ 관련 활동 전반을 지도한 인물이다. 김 회장은 이번처럼 자신을 강연에 초청했거나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여권 인사들에게 상을 남발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 회장은 2019년 6월 취임 후 ‘우리시대 독립군’ ‘단재 신채호상’ ‘역사정의실천 정치인·언론인·기업인상’ 등 온갖 상을 신설한 뒤 80여명에게 시상했다. 수상자는 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친여(親與) 성향 문화·예술·교육인이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3월 ’우리 시대 독립군 대상’을 받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역시 현직이었던 지난 1월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받아 논란이 됐다. 민주당 설훈·안민석·우원식 의원은 지난해 1월 ‘우리시대 독립군’에 선정됐고, 민주당 소속 은수미 성남시장은 지난해 11월 ‘단재 신채호상'을 받았다.

특히 김 회장을 특강 연사로 초청해준 기관·단체에선 이번 양주백석고 외 과거에도 집중적으로 수상자가 나왔다. 작년 10월 경기 파주에서 5명에게 상을 줬다. 당시 광복회보는 “해당 지역의 광복회 지부 및 의회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수상자는 초청 주체인 파주시의회 소속 의원 5명이었다. 올해 2월에도 김 회장은 충청남도의회 초청 강연에 앞서 충남도의원 3명에게 역사정의실천 정치인상을 시상했다. 선정 사유는 ‘충남지역의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며 연구모임을 발족했다’거나 ‘도내 친일 관련 상징물의 공공사용을 제한하는 조례를 대표 발의했다’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