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2시 50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법정.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피고 김경수 경남지사는 고개를 저었다. 재판장이 댓글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을 김 지사가 참관한 사실이 증명된다고 했을 때였다. 재판부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하자 김 지사는 잠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법정을 빠져나온 김 지사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김 지사 지지자들은 실망이 큰지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김 지사는 “대법원에 즉시 상고해 진실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김 지사는 이날 판결 선고 후 “도정(道政)에 흔들림 없이 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권에선 이날 판결로 그의 차기 대선 도전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 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권에선 김 지사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아직 뚜렷한 자파(自派) 대선 주자를 갖지 못한 친문(親文) 진영에서 김 지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던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선고를 받고 최종 확정된 것도 이런 기대를 키웠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무죄 선고가 나올 것이라 예상해 법정에 나오려던 친문계 정치인들도 자제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무죄 선고가 내려질 경우 여론 일각에서 반발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몸을 낮췄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그는 친문 그룹에서 ‘친문 적자(嫡子)’라 불릴 정도로 강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다. 친문계의 한 인사는 “문 대통령도 자신을 보좌하며 궂은일을 도맡았던 김 지사를 아낀다”며 “그런 그가 댓글 조작 사건에 휘말리자 친문 그룹에선 미안함과 부채감 같은 걸 갖고 있다”고 했다.

여권에서 김 지사 무죄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 그의 거취가 차기 대선 판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김 지사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정치적으로 생환(生還)할 경우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가 ‘양강 구도’를 형성한 여권 차기 대선 경쟁 구도가 ‘3자 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김 지사가 (재판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지켜봐야 할 주자”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항소심의 쟁점별 판단

하지만 김 지사가 항소심에서도 피선거권 상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차기 대선 도전 전망은 어두워졌다. 후년 3월 대선 일정을 감안하면 여야의 대선 레이스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 본격 시작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법원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1·2심 모두 징역 2년을 선고한 데다 설령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더라도 후속 재판 일정 등을 감안하면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기엔 촉박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일제히 김 지사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 유감을 나타냈다. 친(親)조국 인사인 김용민 의원은 “충격적”이라고 했다.

여권의 차기 대선 경쟁은 당분간 뚜렷한 친문계 주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낙연·이재명 두 사람의 양강 구도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이낙연 대표는 지난 8·29 당대표 경선에서 친문 진영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친문 그룹이 차기 대선 주자로 그를 선택한 단계는 아니란 평가가 많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대선 경선 때 문 대통령과 경쟁하면서 강성 친문 지지자 그룹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런 만큼 친문 진영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양측의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날 김 지사 유죄 판결에 대해 “아쉽다”며 “대법원에서 바로잡히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이 지사도 “안타깝다”며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기에 잘 수습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대선이 1년 4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친문 진영이 ‘이낙연·이재명’ 양강 구도를 그대로 용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적잖다. 당분간 정권 재창출 가능성과 정체성 측면에서 최적의 추가 카드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친문 인사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여권 대선 레이스의 판도가 출렁일 공산도 있다”고 했다. 이런 차원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제3의 주자가 부상할 가능성도 여권에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