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10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64) 목사, 김학송(55)씨를 맞이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나는 평생 그날 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눈물을 잊지 못할 겁니다.

김학송(57)씨는 지난 2018년 5월 9일, 북한 억류 1년 만에 풀려나던 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당시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한 것을 계기로 북한이 석방한 3명의 미국인(김학송·김상덕·김동철) 가운데 한 명이다.


2018년 미국무부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서 구출한 김학송씨가 28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억류된 6명 송환 요구해야”한다며 인터뷰를 갖고 있다. /남강호 기자

“그날 아침 갑자기 짐을 싸라고 해서 ‘더 독한 곳으로 끌려가겠구나’는 생각에 두려웠어요. 저녁 7시쯤 어딘가로 데려가더니 ‘김학송은 조선인민공화국 법에 따라 엄중 처벌해야 하지만 미국의 강경한 요구에 추방한다’고 선언하고 내보냈어요. 꿈인가 싶었습니다.” 김씨 일행을 태운 밴은 평양 순안공항으로 진입해 활주로 인근에 대기중인 미 공군 전용기 앞에 멈춰섰다.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칠해져있는 비행기를 보고서야 진짜 풀려났다는 게 실감났죠. 비행기로 오르는 계단 앞에 덩치가 큰 남자가 서있더군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울고 있었어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었어요.”

그는 폼페이오 장관의 눈물이 미국인 3명을 무사히 데리고 돌아가게 됐다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입국해 한 달 정도 지내고 30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인터뷰와 전화 통화를 통해 그의 얘기를 들었다.

◇새벽 2시42분에 만난 미국 대통령

"미국에 도착하니 다음 날 새벽 2시 40분쯤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기내까지 들어와서 우리 일행을 맞이했어요.”

이들을 태운 전용기는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에서 중간 급유를 받고 알래스카를 거쳐 워싱턴DC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온통 가족 생각뿐이었어요. 알래스카에서 도착한 뒤 다시 워싱턴을 향해 출발할 때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마중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김 선교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기내까지 들어와서 북한에서 풀려난 우리 일행을 맞이했어요. 미국 국민을 대신해 고국으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고 했어요. ‘당신은 영웅’이라면서 악수도 했다”며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부모·자녀 사이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국적만 미국이지 저는 미국을 위해 한 일이 없어요. 제가 북한에 간 것도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를 위해 간 거였어요. 그런데도 미국은 저를 구출해줬어요.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요. 뒤늦게 정착한 외국 이민자이고 영어도 잘못하는데도요. 미국은 국민을 끝까지 책임지는 국가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이메일이 최고 존엄 모독죄

중국 옌볜에서 태어난 김씨는 농대를 졸업한 뒤 중국 투먼시 농업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1995년 미국 방문을 계기로 신학을 공부했고 10여년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선교 활동을 하며 북한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유식 등을 보냈다. 그는 2014년부터 평양과학기술대 농생명과학부 실습농장에서 근무하며 농업 기술을 가르치다가 2017년 5월 6일 느닷없이 체포돼 독방에 갇혔다. 한국과 중국의 지인들에게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을 문제 삼아 최고 존엄 모독죄, 공화국 비방죄 등의 혐의를 씌운 것이다.

“체포되고 39일째 되는 날에 처음으로 씻을 수 있게 하더군요. 이튿날 조셉 윤(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을 만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조셉 윤이 저희 생사를 확인하겠다며 북한에 요구해 만나게 된 것이었어요.” 김 선교사는 “미국 정부가 우리 신변을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안정을 찾는 계기가 됐다”며 “한국 정부도 북한이 억류중인 국민 6명을 접촉해 이들의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2018년 5월 10일 오전 3시(한국 시각 오후 4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64) 목사, 김상덕(토니 김·59) 전 중국 옌볜과기대 교수, 김학송(55)씨와 함께 비행기에서 나와 대화하고 있다./워싱턴 포스트 라이브 캡처

◇"나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 6명의 이름을 알고 있다"

김 선교사는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민 6명에 대한 석방 운동을 벌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2013~2014년에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에 강제로 억류된 우리 국민 6명의 송환을 촉구한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현재 8만8000여 명이 동의했다. 김 선교사는 “김정욱·김국기·최춘길·김원호·고현철·함진우씨 등 6명의 국민이 7~8년째 억류돼 지옥 같은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다”며 “이들은 단둥과 옌볜 등지에서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을 하다 북한에 강제로 붙잡혀갔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그렇게 많이 만나고도 왜 붙잡힌 국민을 풀어달라고 하지 않느냐”며 “정부가 북한에 억류된 6명의 생사를 반드시 확인해 가족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24일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서 사살된 소식을 접하고 “정부가 월북 등 과정을 따지는 것을 보며 모든 책임을 죽은 사람에게 돌린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국가 주권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군의 기강도 국민 정서도 예전과는 너무 다르다”며 “1970~80년대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사과문을 보냈다고 정부가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정부가 김정은의 대변인인가요. 사망한 국민의 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럴 수는 없죠.” 그는 또 “대통령의 친척이나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해도 정부가 이렇게 남의 일처럼 대하겠느냐”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억류 중인 6명을 구출해야 한다"

그는 “북한이 말로만 하는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진정한 사과의 뜻이 있다면 억류중인 국민 6명을 석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국민 6명을 하루빨리 석방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국민들을 석방해야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해야죠.”

김 선교사는 “지옥과 다름없는 북한에 갇혀있을 때도, 그곳에서 빠져나와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늘 가족 생각뿐이었다”며 “이번에 살해된 공무원도, 지금 북한에 붙잡혀있는 6명도 가장 절박한 때에 가족들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사과의 뜻을 밝혀 명분도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왜 강제로 붙잡혀 있는 국민들을 석방하라고 북한에 요구하지 않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