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오전 권영세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약 한시간 동안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제시할 담대한 제안에 대해 현실성 있는 방안을 촘촘하게 준비해달라”고 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22일 대통령 업무 보고 후 브리핑에서 “가장 중점 보고한 사항은 담대한 계획”이라고 했다. ‘담대한 계획’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내놓은 대북 정책으로,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면 북한 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고 안보 우려도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권 장관은 “두 번째로 강조해서 보고한 사항은 인권”이라며 6년째 표류 중인 북한인권재단의 연내 출범을 거론했다. 인권은 북한의 거부감이 큰 사안이다. 남북대화·경협 등 유화책 일변도였던 진보 정부, 제재·압박에 무게를 뒀던 과거 보수 정부와 달리 유인책과 압박책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배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권 장관은 브리핑에서 “담대한 계획 안에 북한이 제기하는 안보 우려 및 요구 사항 등을 포함해 경제적·안보적 종합적 차원의 상호 단계적인 조치를 포괄적으로 담는 방안을 보고했다”고 했다. 이어 “남북대화, 남·북·미 대화를 통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진전과 맞물려 정치 군사적 대결 관계를 해소하고 경제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 방안을 협의해 나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고 했다.

권 장관의 설명은 윤 대통령의 최초 언급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사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주민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당시 비핵화 유인책으로 경제 보상책만 거론한 것을 두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3000′과의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안전 보장책을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권 장관은 “이 방안이 본격 실현되면 북한이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경제난을 극복해서 핵을 더 이상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도록 담대한 내용을 구상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다. 이날 윤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현실성 있고 촘촘하게 준비해달라”고 한 것도 아직 개념 단계인 ‘담대한 계획’의 완성도를 높여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됐다.

군사·안보와 관련한 북한의 일관된 요구는 한미 연합 훈련 중단과 주한 미군 철수다. 여권 관계자는 “연합 훈련과 주한 미군을 비핵화 유인책으로 쓸 순 없다”며 “미·북 관계 정상화 프로세스가 궤도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조정될 문제”라고 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북 간에 논의됐던 관계 정상화 방안들을 다시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북은 상호 이익 대표부 또는 연락사무소 설치에 합의했지만 ‘하노이 노딜’로 없던 일이 됐다. 연락사무소 설치, 평화 체제 구축, 미·북 수교 등의 북 체제보장책들은 모두 미국의 의중에 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날 권 장관이 “한미 간 긴밀한 조율 및 공조를 거칠 방침”이라고 밝힌 것도 이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북한인권재단 출범과 관련, 권 장관은 이어 “하반기 국회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해 금년 내 출범시킬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9일 5년째 공석인 북한인권대사에 고려대 이신화 교수를 내정했다. 북한인권대사와 북한인권재단은 2016년 9월 발효된 북한인권법에 규정돼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문화되다시피 한 북한인권법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북한의 반발이 예상된다.

권 장관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 협력은 정치·군사적 고려 없이 일관되게 추진해 나간다는 기조하에 단계적으로 보건 의료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보고했다”며 “특히 이산가족, 국군 포로, 납북자, 억류자 문제는 이분들의 고령화 등을 감안하면 윤석열 정부 5년이 사실상 마지막 해결 기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