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간첩 등 반국가 세력의 추적·검거를 전담해온 보안 경찰 1600여 명을 일반 수사 경찰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대공·방첩 수사를 전담해 온 보안 경과(警科·특기)를 일반 형사사건을 처리하는 수사 특기로 통폐합하겠다는 것이다.

여당은 이날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 정보위 소위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따른 안보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찰청은 안보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 보안 특기 통폐합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공 수사 전문가들은 보안 특기 폐지가 대공 수사 역량의 강화보다는 급속한 약화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했다. 조영기 국가정보학회 부회장은 “보안 경과를 수사 경과로 통폐합하는 것은 심장 전문의가 해야 할 수술을 일반 외과 의사에게 맡기는 격”이라고 했다.

24일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보안 경찰을 일반 수사 경찰로 일괄 전환하는 계획은 지난 17일 경찰청 보안국이 소집한 ‘안보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한 지방청 보안과장 화상회의’에서 공개됐다. 보안국 간부들이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이관받게 될) 안보수사국 출범에 맞춰 안보 수사 역량을 강화하려면 대공 분야에 집중해온 보안 경과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보안 특기 폐지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의 특기(경과)는 일반⋅수사⋅보안⋅특수 등 네 가지다. 이 중 보안을 수사로 통폐합해 3개로 재편한다는 게 경찰청의 계획이다. 통폐합 대상인 보안 특기자는 대공 수사에 직접 종사하는 470여 명을 비롯해 총 1600여 명에 달한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전국 지방청 보안과장 상당수가 보안 경찰제 폐지 방침에 “보안 특기를 없애면 안보 수사 역량이 강화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력화된다”는 취지로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원래 회의가 70분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 보안수사대 소속 경찰 A씨는 “보안 경과가 없어지면 안보수사국은 대공수사 경험이 거의 없는 인력들로 채워질 것”이라며 “수십년간 축적돼 온 대공수사 역량도 빠르게 사장될 것”이라고 했다. 한 지방청 보안과 소속 경찰은 “보안 경과 폐지는 앞으로 간첩 수사를 않겠다는 얘기”라며 “김정은 정권과 국내 종북 세력에 꽃길을 깔아주는 안보 자해행위”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대공 수사 역량은 현 정부 들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공 수사권 폐지 추진으로 사실상 간첩 수사 기능이 크게 약화했다는 지적이다. 경찰도 2018년 평창올림픽 무렵 본격화한 남북 화해 기류 속에 현 정부 출범 직후(2017년 6월) 620여 명이던 각 지방청 보안수사대 정원이 현재 470여 명으로 24% 줄었다. 관련 예산도 같은 기간 95억7100만원에서 62억3000만원으로 35% 급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공수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수사관들도 간첩 검거 등 국가보안법 관련 수사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각 지방청 보수대와 일선 경찰서 보안과 모두 간첩 잡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탈북자 마약 수사, 전략물자 반출 수사 등에 치중하는 형편”이라며 “안보 공백은 이미 현실이 됐다”고 했다.

특히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로 국정원의 대북 정보와 경찰의 대공 수사가 분리될 경우 수사력이 현저히 약해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 노하우를 단기간 경찰에 전수하기도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27일 강행 처리할 방침이다. 여당은 이날 국회 정보위 법안 소위를 열고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민주당은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되 3년을 유예하자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대공 수사권을 국정원에 그대로 두자고 주장하며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국내 정치에 악용할 우려가 있어 정보와 수사를 분리했던 것인데, 국내 정보를 독점하는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게 되면서 재결합하는 것”이라며 “남영동 대공분실을 운영한 5공 시절의 치안본부 보안국을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