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제3별관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집값 통계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된 국토교통부 전·현직 고위 공무원 대다수가, 통계 조작에 관여한 직후 잇따라 승진·영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집값 통계 조작이 벌어진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집값 통계를 작성하는 한국부동산원에 대한 지휘선상에 있었던 국토부 일반직 공무원 11명 가운데 9명(81.8%)이 승진하거나 공공기관장, 경제 분야 주요 민간 단체장 등으로 영전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19년 3월부터 2020년 9월까지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을 지낸 L씨의 경우다. 2020년 2월 4급 서기관에서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L씨는 2021년 9월 고위공무원으로 다시 승진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균형국장에 임명됐다. 3급으로 승진한 지 1년 7개월 만이었다.

감사원이 지난달 발표한 문 정부의 국가 통계 조작에 관한 감사 중간 결과에 따르면, L씨는 2019년 7월 당시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으로서 부동산원 간부에게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한 장본인이다. L씨가 말한 ‘협조’란, 아파트 가격 통계 조작이었다. 전년도 9·13 부동산 대책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었던 아파트 가격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부동산원 통계가 미리 보고되자, 상승률을 실제보다 낮춰 발표하라고 한 것이다.

L씨가 부동산원 간부를 압박하는 동안, L씨의 상관이었던 당시 국토부 1차관 B씨와 주택토지실장(1급) I씨는 부동산원 원장을 압박했다. 부동산원 원장은 세종시의 국토부 청사로 불려가 B씨와 I씨를 차례로 만나, 원장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받았다. ‘통계 조작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런 B씨와 I씨도 통계 조작이 벌어진 시기에 승진가도를 달렸다. B씨는 문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동산원이 작성 중인 아파트 가격 통계를 불법적으로 받아보기 시작한 2017년 6월에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이었고, 이듬해 12월 1차관으로 승진해 2020년 11월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2021년 8월부터는 주요 기업 연합 단체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I씨는 2020년 3월 문 전 대통령에 의해 차관급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 임명됐다.

부동산원은 앞서 2017년 6월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지시로 청와대와 국토부에 ‘작성 중’인 집값 통계를 매주 제출하기 시작했다. 통계법에 따르면, 작성 중인 통계는 새로운 통계를 설계하거나 기존 통계를 개편하기 위한 경우에 한해서만 미리 받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작성 중인 통계를 받아보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감사원은 이 불법 행위를 발단으로, 청와대와 국토부가 미리 받아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높다고 생각되면 부동산원을 압박해 상승률을 낮춰 발표하게 하는 수법으로 통계 조작을 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국토부 1차관 S씨는 이듬해인 2018년 12월 퇴임한 뒤 3개월 만인 2019년 3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1차관 S씨와 주택토지실장 B씨 밑에 있었던 주택정책관(2급) I씨는 국토부 대변인을 거쳐 2018년 7월 승진해 B씨 후임으로 주택토지실장이 됐다. 당시 I씨 밑에서 주택정책과장으로 있었던 K씨는 2019년 3월 항공안전정책관(2급)으로 승진 이동했다.

집값 통계 조작이 계속되면서, 조작이 시작된 시기 국토부 담당자들의 후임자들도 줄줄이 승진했다. 2017년 6월 청와대로 파견된 국토부 고위공무원 Y씨는 2020년 7월까지 국토교통비서관을 역임했다. 감사원은 Y씨가 집값 통계 조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Y씨는 2020년 11월 S씨·B씨에 이어 국토부 1차관으로 승진 임명됐다. 2017년 9월 I씨 후임으로 주택정책관을 맡은 G씨는 2020년 2월 1급으로 승진해 다시 I씨 후임으로 주택토지실장을 맡았다. 2020년 2월 G씨 후임으로 주택정책관을 맡은 H씨는 5개월 만에 청와대로 파견돼, Y씨 후임으로 국토교통비서관이 됐다. H씨는 이듬해 8월 1급으로 승진하면서 국토부로 돌아와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다. K씨와 L씨에 이어 주택정책과장을 맡은 J씨도 2021년 9월 4급 서기관에서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감사원은 국토부 공무원들의 승진이나 영전이 통계 조작에 관여한 데 대한 대가로 주어졌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누구를 무슨 이유에서 승진시켰는지는 공문서 등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라며 “검찰의 강제 수사로 밝힐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대식 의원은 “통계 조작은 국가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며 “검찰 수사를 통해 위법을 저지른 이들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묻고, 국토부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