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보고서 나온 날, 감사원 앞에서 1인 시위 -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감사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감사원이 허위·조작 감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증거로 드러난 감사원 감사를 부인하면서 지지 세력에 호소하려는 정치적 행위로 보인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권익위 직원들의 비위 사실을 명시한 감사원 감사 보고서가 진통 끝에 9일 공개됐다. 전 위원장은 권익위가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유리하게 이해충돌방지법을 유권해석하는 과정에 관여했고, 그러면서도 권익위가 자신의 개입을 부인하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기관이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내는 보도 자료에 사실이 아닌 내용을 적게 한 것이다.

부패방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 청탁금지법,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주무 부처인 권익위의 일부 직원이 법 취지에 반하는 행태를 보여온 사실도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감사원이 일방적 주장을 담은 감사 결과를 불법적으로 공개했다”며 “권익위원장을 망신 주려는 허위, 조작, 직권 남용 감사”라고 주장했다.

그래픽=김성규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공직자 복무관리실태 등 점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아들이 군 복무에서 특혜를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이 있는 추 장관의 직무와 검찰 수사 간에 이해 충돌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직무 관련성이 없다’며 추 장관에게 유리한 유권해석을 내놨다. 이는 박은정 권익위원장 시절인 2019년 9월 권익위가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아내가 검찰 수사를 받은 것과 관련해, 조 장관의 직무와 검찰의 수사 간에 이해 충돌 소지가 있다고 해석한 것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인 전 위원장이 유권해석 과정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자, 권익위는 2020년 9월 “유권해석은 전적으로 담당 실무진의 판단 결과”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그러나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권익위 실무진이 9월 2일 전 위원장에게 당초 보고한 유권해석 내용은 조국 전 장관 선례대로 직무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가정적 상황을 가지고 직무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고 답변이 나가면 되겠느냐?”라고 실무진에게 말했고, 실무진은 전 위원장 보고를 거쳐 9월 14일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유권해석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바꿨다.

그런데도 전 위원장은 자신의 관여를 부인하는 보도 자료를 수행 비서에게 작성하게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수행 비서가 전 위원장이 지시한 내용대로 보도 자료 문서를 타이핑했다”고 설명했다. 이 보도 자료 파일은 ‘위원장님 작성’이라는 이름이 붙어 실무진에게 전달됐고, 실무진은 이를 그대로 배포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기관의 보도 자료 작성·배포는 그 형식이나 내용 등을 정하는 데 있어 일정 부분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이므로 별도로 (주의 등) 처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전 위원장이 유권해석 결론 도출 과정에 관여했는데도 이 유권해석이 실무진의 전적인 판단인 것으로 보도 자료를 작성·배포한 것은 감사 보고서에 그 실태를 그대로 기재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허위 보도 자료를 낸 것을 현행법 위반으로 처벌하기는 어렵지만, 허위 보도 자료를 내게 한 것 자체는 인정된다는 의미다.

감사원은 전 위원장이 서울에서 정부세종청사 권익위 사무실로 출퇴근하면서 상습적으로 지각했다는 점도 공개했다. 전 위원장은 세종시의 권익위원장 관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서울 자택에서 권익위로 출퇴근했다. 그런데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전 위원장은 공식 외부 일정이 있거나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세종청사의 권익위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날 89일 가운데 83일(93.3%)을 지각했다. 임기 초인 2020년에는 세종청사에 9시 이전에 출근한 날도 있었으나, 202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는 하루도 제 시각에 출근하지 않았다. 전 위원장은 오전 9시 20분 서울 수서역을 출발해 9시 57분 충북 청주시 오송역에 도착하는 SRT를 주로 이용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전 위원장에게 6차례에 걸쳐 소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전 위원장은 “자료 제출 요구가 부당하다”며 감사원에 어떠한 소명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전 위원장이 소명하지 않은 것은 기관장으로서 적절한 처신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감사원은 “기관장의 경우 출퇴근 시간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전 위원장 근무시간 점검 결과는 그 실태를 보고서에 그대로 기재하되, 별도로 (주의 등의) 처분 요구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감사원이 주장하는 출근 시각은 간접 증거로 추정한 일방적 추정 내용일 뿐”이라며 “주말도 없이 밤새도록 일 중독자처럼 일했다는 사실을 은폐·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탁금지법 시행을 총괄하는 권익위의 직원들이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허위 문서까지 작성한 사실도 감사 결과 드러났다. 전 위원장은 2020년 11월 23일 권익위 직원 및 외부 인사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업무 추진비로 식대 27만2000원을 결제했다. 식사를 한 인원은 8명으로, 1인당 식대는 3만4000원이었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에 따른 식대 상한인 1인당 3만원을 넘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권익위에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가 접수되고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전 위원장의 수행 비서는 다른 권익위 직원과 말을 맞춰 ‘식사 자리에는 10명이 있었고 8인분을 10명이 나눠 먹었다’고 기자에게 거짓말을 했다.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을 담당하는 권익위 부서에도 허위 문서를 만들어 제출했다.

전 위원장 수행 비서는 공금 2400여 만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수행 비서는 출장을 다녀오면서 개인적으로 결제한 부분이 있다며 출장비를 청구해 받았으나, 상당수는 허위로 청구한 것이었다. 열차 승차권이나 호텔 투숙 비용 등을 개인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취소해 놓고, 이를 정상 결제한 것처럼 조작해 출장비를 청구하는 수법이었다. 감사원은 전 위원장의 수행 비서에 대해 “비위 정도가 심하고 행위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권익위에 해임 징계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위원장 감사 과정에서 진행된 불법 ‘별건 감사’를 통해 나온 결과로, 증거 능력이 없어 무효”라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전 위원장 개인이 아니라 권익위 기관에 주의를 주기로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전 위원장이 기관장이라서 스스로 징계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고 했다. 전 위원장은 “감사위원회의가 혐의 대부분을 불문(무혐의) 결정했는데, 감사원 사무처가 사실과 다른 보고서를 불법적으로 공개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