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공단 전 이사장 권경업씨가 주도해서 ‘대한민국 히말라야 등반대장 202인 이재명 지지선언’이란 걸 했다. 2월11일 선언식 동영상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그냥 200이 아니라 202라 하니 한국 히말라야 등반대장들은 탈탈 털어 거의 모두 참여시켰나보다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산악인들이 '대한민국 히말라야 등반대장 202인 성명회'를 갖고 이재명후보 지지를 선언했다./유튜브

하지만, 아니다. 히말라야 원정을 나간 한국 원정대는 지금까지 1천 개가 넘으니 그중에 202명 대장이라면 20%쯤 된다. 큰 원정대는 대개 원정대장과 등반대장을 따로 두는데, 이들을 아울러 ‘등반대장’이라 칭했다면 10%로 줄어든다.

선언 모양새도 좀 이상하다. 대개 시국 선언이나 지지 선언을 할 경우 모두는 아니더라도 핵심 참여자들 이름은 주욱 공개한다. 유튜브 동영상 아래엔 4000자까지 글을 넣을 수 있다. 선언문이 350자쯤 되고 이름 석자씩 200명이면 600자이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동영상과 더불어 인터넷을 암만 뒤져봐도 2월19일 현재 선언문 낭독자 권씨 이외 이름을 밝힌 사람이 없다.

2017년 국립공원공단 이사장 인사는 산악인이라면 특히 잘 기억하고 있을, 공공기관장 채용비리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었던 바로 그 건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가 권경업씨를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으로 낙점했고, 권씨는 환경부로부터 면접 예상 질문과 답변서를 제공받고 자기소개서 작성도 도움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만으로도 그는 산악인 세 글자에 먹칠을 적잖이 한 셈이다.

권씨는 지난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지지 운동을 했다. 부산의 어느 사거리에서 ‘문재인’ 피켓을 들고, 피해서 가는 행인을 따라가기까지 하며 지지를 호소하던 그의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덕인가. 그는 문재인대통령 취임 이후 결국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그 이전에 그는 상설 조직의 장을 맡아 이끌어본 경험이 거의 없다. “공단 이사장이 고작 이런 자리구만” 하면서, 산악인들이 술자리에서 피식피식 실소와 더불어 그 소식을 안주 삼아 나누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런저런 연유로. 몇몇 산악인이 친분 관계상 차마 거절은 못하고 이름 공개는 하지 말아 달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이번 지지선언에서 권씨는 ‘백두대간 모든 산길이 규제 없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런 규제의 핵심 기관인 국립공원공단 이사장 재임 3년간은 대체 무얼 하다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어리둥절하다.

202명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실은 그중 꽤 여러 명이 진짜 대장이 아니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유튜브 선언 동영상을 보면 202명이 아니라 고작 10여 명이 모여 플래카드를 잡고 나란히 섰는데, 그나마 금방 큼직한 제목 글씨로 가려버렸다. 마스크를 쓴 데다 어떤 이는 검은 선글라스에 복면까지 해서 누구인지 대체 알아볼 수 없다.

이런 허접한 선언이 과연 지지 효과를 올릴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유튜브에 올린 지 일주일이 지났어도 조회수는 1천이 채 안 된다.

등반대 대장(隊長)은 ‘포 스타’ 대장(大將)과 발음이 똑 같아서 은근히 무게감이 더해진다. 하지만 포터 한 명 데리고 자기까지 단 두 명이 가도 원정대나 등반대라 칭한다. 그런 어쭙잖은 대장 말고, 한국 히말라야 원정사에서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전드급 대장들이 있다. 속초 국립산악박물관에 한국의 대표적 산악인들 사진과 약력이 전시돼 있는데,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두루 물어보았다.

엄홍길대장. 물론 그가 이런 기이한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릴 리가 없다. 한국 히말라야 등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주역이자 <역동의 히말라야> 저자인 남선우 대한산악연맹 교육원장. 그는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며 흥분했다. 한국의 대표적 산악저술가로서 한국산악회 산악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원로산악인 이용대씨는 창피해서 어디 산악인이라며 고개 들고 다니겠느냐고 했다.

경남산악계 히말라야 원정의 큰 흐름을 주도한 조형규 대장. 동영상 소감을 묻자 허,허,허,허, 거 참···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부산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이끈 홍보성 대장. 그는 아따, 마, 이게 뭔교, 하면서 혀를 찼다.

한국의 유럽알프스 등반 선구자 역할을 했던 허욱씨는 “내가 왜”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느 유명 산악인은 평소의 친분 관계 때문에 마지 못해 응낙했는데, 나중에 영상을 보고 서둘러 이름을 빼달라 했다고 한다.

권씨는 이런 수준의 ‘202 등반대장 지지선언’ 동영상을 자신이 한국 산악계의 이재명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증표로 삼으려는 것이겠다. 이걸로 그는 장차 어떤 기관장 자리를 얻어 얼마나 영화를 누리게 될지.

2019년 유네스코는 알피니즘을 ‘높은 산의 정상과 벽을 오르는 예술(the art of climbing up summits and walls in high mountains)’이라 규정하면서 인류무형문화재로 등록했다. 권경업씨는 이런 알피니즘을 정치판의 진흙탕 가운데로 끌어들여 나뒹굴게 한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