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오른쪽),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8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소상공인연합회 신년 하례식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생활 밀착’이란 명분으로 놀이터 신설, 동네 둘레길 조성, 지하 주차장 건설 등의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공약까지 내걸고 있는 것이다. 여야의 공약 경쟁이 ‘동 단위’ ‘아파트 단지’까지 내려온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실용이란 이름으로 ‘나를 찍어주면 해줄게’라는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24일 경기도 용인·이천·여주·양평·성남·광주 등을 돌아다니며 ‘기흥호수 둘레길 완성’ ‘경찰대 부지에 시민공원 조성’ ‘이천 공공 종합복지시설 건립’ ‘여주 마을급식소 신설’ 등을 공약했다. 양평에선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광주에선 ‘무장애 통합놀이터 조성’을 약속했다. 과거 같으면 자치단체장이나 시·군의원 선거에서나 나왔을 법한 공약이다. 그는 전날 경기도 수원을 갔을 땐 ‘화성행궁 앞 지하 공영주차장 건설’을 공약하기도 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대선에서 기초자치 단체 공약까지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공약 시리즈인 ‘우리동네공약’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같은 동네라도 ‘아파트 단지’까지 세밀화하는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민의힘은 각 시·구의원, 당협위원장 등을 통해 동네 공약을 접수 중이다. 여기서 채택된 공약들은 윤 후보의 아바타인 ‘AI(인공지능) 윤석열’을 통해 다음 달 공개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강 공원 등에 반려동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펫공원’ 조성을 발표한 뒤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게 AI 윤석열이 “00구 00아파트 00단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아파트 주민들 단톡방 등을 통해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윤 후보측은 수도권의 경우 ‘보육시설 확충이 필요한 아파트’ ‘재개발·재건축 추진을 원하는 아파트’ 등으로 구분해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24일 ‘동네 공약’ 공개와 관련해 “이번 대선은 기본적으로 ‘카드 포인트’ 대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지율 부스터샷”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대선이 박빙 대결로 가는 상황에서 카드 포인트 모으듯 하나하나 지지를 쌓아야 하고, 지지자를 투표장에 끌어내려면 ‘부스터샷’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마이크로 타기팅(micro targeting·세분화)’ ‘정밀 타격형’ 공약 경쟁은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중도층과 2030세대를 집중 공략해야 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여야 후보들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과 대규모 개발 공약은 상당 부분 비슷하다. 또 북한 문제 등을 제외하면 이념적 차이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엇비슷한 공약 속에 유권자들이 중도 수렴 현상을 보이는 상황에서는 ‘동네 공약’ 등 수천·수만표를 노린 공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동네 공약’을 홍보하기 위해 올린 유튜브 동영상에서 ‘우리동네를 위해, 이재명’이란 슬로건을 넣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내가 사는 동네 일자리가 많아질 수 있도록 에너지 교통, 생활환경 구축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용인 지역 공약에서 “‘물맑은 기흥호수, 걷기 편한 둘레길’을 완성하겠다”고 했고 “용인 의료원 설립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 여주에선 “만 65세 이상께 1일1식을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마을급식소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시장, 군수를 뽑거나 시·군의원 선거에 나올 법한 공약들이다.

윤석열 후보 측이 지난달 공개한 ‘AI 윤석열’은 애초부터 동네 공약과 ‘마이크로 타기팅’을 위해 고안됐다는 설명이다. 윤 후보는 지난 11월부터 ‘AI 윤석열’을 준비했고 이를 위해 이틀간 꼬박 녹음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본격적인 선거전이 펼쳐지면 AI윤석열이 나서서 “00단지 아파트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걸어서 30분 거리에 제가 공원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식의 영상을 만들어 뿌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현상은 이 후보의 이른바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윤 후보의 ‘석열 씨의 심쿵 약속’ 등 일상 공약에서 나타나고 있다. 두 공약 시리즈는 이름은 다르지만, 이 후보의 1호 소확행 공약이 ‘오토바이 소음근절’, 윤 후보의 1호 심쿵 공약이 ‘택시 운전석 칸막이 설치’일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 단순한 현안 해결이 아니라 아예 ‘각론’까지 들어간 공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후보 측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했던 ‘탈모 치료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온라인상에서 큰 호응을 얻자 이를 소확행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윤 후보는 최근 심쿵 공약으로 대기업 직원 복지용 콘도 시설을 중소기업 근로자가 이용하면 이를 대기업의 복지 지출로 간주하고 세액공제를 해주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중소기업 직원의 휴가와 복지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지난 8일부터는 이준석 대표와 원희룡 정책본부장이 함께 출연하는 ‘59초 쇼츠(shorts)’ 공약 영상 발표도 시작했다. 쇼츠란 1분 미만의 짧은 유튜브 영상 형식이다. 윤 후보는 이 쇼츠 영상에서 전기차 충전 요금 동결, 체육시설 소득공제 등을 공약했다.

그러나 이 같은 ‘동 단위’ 공약과 ‘마이크로 타기팅’에 대해 “당장의 지지만 노리는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나온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전체적인 걸 봐야 하는데, (대선 후보가) 동네 얘기하면서 ‘표를 주면 대가를 주겠다는 식’의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공약은) 개별 동네에서는 말이 되는 거지만 전체적으로 다 합쳐 놓고 보면 일관성이 없다는 문제에 봉착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