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 북한의 일방적인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제1차 북핵 위기 전후 협상 기록이 담긴 외교문서가 29일 공개됐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핵 위기’가 태동한 당시 문서가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외교문서 일부./외교부

외교부는 이날 이런 내용이 담긴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2306권, 37만여쪽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촉발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로버트 갈루치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강석주 당시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이 뉴욕과 제네바에서 만나 고위급 회담을 연 기록 등이 담겨있다.

1993년 7월 14∼19일 제네바에서 열린 2차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은 가동 중인 흑연방식 원자로를 경수로로 전환하는 데 미국이 협조한다면 현재 운용 중인 원자로, 건설 중인 원자로와 핵무기 관련시설을 모두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갈루치 차관보는 합의 타결 후 주제네바 한국대사에게 설명했다. 공개된 우리측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경수로 문제에 대해 “야구 시합으로 비유한다면, 초구로 들어온 커브볼처럼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으나, 북쪽의 제안은 핵 비확산을 향한 진척(development)으로 볼 수 있으므로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본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제네바 현지에 체류하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은 북한의 경수로 방식 전환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지연전술 책동이 아닌지” 우려를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1994년 미국과 북한은 핵 동결 등을 대가로 경수로 발전소 건설과 중유를 제공하는 제네바합의에 도달하지만, 이마저도 2003년 북한이 NPT에서 최종 탈퇴하며 파기된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8년 퇴임 직후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질문에 ‘무장 세력의 난동’이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도 이번 외교문서 공개로 알려졌다. 전두환은 1988년 4월 7일 뉴욕에서 미국외교협회(CFR) 행사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주제로 연설한 뒤 한 참석자로부터 “광주사태에 대한 사과 의향이 있는지”와 “재임 중 언론을 탄압하고 경찰국가를 운영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전두환은 “(한국을) 경찰국가라고 했지만 뉴욕에서 무기와 수류탄을 가진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난동을 벌일 때 미국 경찰은 그런 사람을 민주 인사로 볼 것인가, 또는 질서를 파괴한 범법자로 볼 것인가 묻고 싶다”고 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무장 세력의 난동에 비유했다는 해석이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