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파 속에서도 새벽 찬 이슬을 맞으며 시험비행 준비를 하고 있는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보라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는 KF-21을 플랫폼으로 한 6세대 전투기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남강호 기자

2022년 폴란드에서 역대 최대 수출 방산 수주액 173억달러를 달성한 ‘K방산’이 글로벌 4위 도약을 꿈꾸고 있다. 열사(熱砂)의 땅 중동 ‘오일 머니’가 열쇠다. 지난해 11월 한국 LIG넥스원과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간에 체결한 천궁-Ⅱ 10개 포대 32억달러(약 4조2500억원) 규모의 계약이 이뤄진 데 이어 앞으로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 K방산이 효자 무기인 K9 자주포, K2 전차, 탄도탄 요격미사일 천궁Ⅱ 등 지상군 무기 체계를 넘어서서 잠수함과 미래형 6세대 전투기 사업으로 확대할 조짐도 보여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방위사업청은 최근 “첨단 전략 산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올해 방산 수출 200억달러를 달성할 것”이라며 “세계 방산 시장점유율을 9% 내외로 끌어올려 2027년까지 세계 4대 방산 강국 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K-방산의 2018~2022년 시장 점유율은 2.4%였는데 이를 급격히 늘리겠다는 것이다.

◇방한한 중동 ‘큰손’들 KF21·수리온 참관

중동 국가 고위직들은 이달 들어 잇따라 방한해 한국군 무기 체계를 참관했다. 18일 방산 업계에 따르면 탈랄 압둘라 아오타이비 사우디 국방차관은 13일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해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천궁-Ⅱ, 해상 기반 한국형 3축 체계의 핵심 전력인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을 둘러봤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4조2500억원 규모 천궁-Ⅱ 계약을 했는데 추가 한국군 무기 체계 도입 검토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신원식 장관의 지난달 사우디 방문 당시 논의된 6세대 전투기(스텔스 기능 및 유·무인 복합 체계 탑재) 개발과 관련해서도 추가적인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궁은 2.75인치 유도로켓이다. 다수 표적에 동시 대응이 가능하다. /LIG넥스원 제공

이라크의 사미르 자키 후세인 알말리키 육군 항공사령관(중장) 등 이라크군 고위 관계자도 지난 4∼7일 한국을 방문했다. 알말리키 사령관은 수도권에서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로 이동할 때 KAI가 제작한 국산 다목적 헬기 ‘수리온’을 탄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사천에서 수리온 계열의 중형 헬기 ‘흰수리’ 운용 모습을 참관하고 직접 탑승해봤다고 한다. 이라크가 관심을 보이는 수리온은 방위사업청 주관 아래 국방과학연구소(ADD)와 KAI 등이 2006년부터 개발한 첫 국산 기동 헬기다. 2012년부터 육군에 실전 배치돼 기동 헬기와 의무 헬기로 활용되고 있다. 흰수리는 수리온을 기반으로 해양 테러, 해양 범죄 단속, 수색 구조 등 해양경찰 임무 수행에 적합하도록 개발·개조된 헬기다. 이라크는 2013년 국산 경공격기인 FA-50(이라크 수출 모델명 T-50IQ) 24대 구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이라크, 인도네시아, 태국 등 여러 나라와 수리온 수출을 협의해왔지만 아직 계약 성사까지 이른 곳은 없는데, 이라크가 군 고위 장성까지 파견할 정도로 관심을 보여 첫 수출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는 말이 나온다.

중동 곳곳에서 군사적 소요가 발생하면서 우수한 실전 성능과 빠른 공급 능력, 가격 대비 성능을 갖춘 한국 무기를 주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해군 도산안창호함이 수면으로 올라와 항해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술로 독자 설계·건조된 첫 번째 3000t급 잠수함으로 사우디아라비아·캐나다·폴란드 등에 수출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해군

◇첫 3000t급 잠수함 수출 이뤄지나

K방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첫 3000t급 잠수함 수출 가능성에도 청신호가 들어왔다. 한국 방산업계는 중형 잠수함 3척 건조 계획을 발표한 폴란드에 입찰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캐나다는 3000t급 잠수함 8∼12척 건조 계획을 발표했다. 필리핀도 잠수함 2척 구매를 계획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잠수함 물량과 금액은 캐나다 8~12척(60조원), 폴란드는 2~3척(5조원), 필리핀은 2척(3조원) 등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해군도 잠수함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방산업계는 1992년 국내 기술로 첫 잠수함 ‘이천함’을 건조했고, 2011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잠수함 3척을 수주하며 잠수함 수출국이 됐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함 등 3000t급 잠수함은 여태 수출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기류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렸던 국제방위산업전 WDS 2024에서는 주력 전시 품목으로 잠수함을 내세운 국내 방산업체가 나타날 정도였다. 사우디가 잠수함 구매 의사를 보이자 이를 집중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올해 초 캐나다를 찾은 양용모 해군참모총장도 한국형 3000t급 잠수함의 우수성을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00t급 한국형 잠수함은 디젤 엔진 기반이지만 사거리 800km의 단거리 탄도탄을 탑재·발사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한다.

그래픽=김성규

◇세계 최대 미국 시장 공략 확대해야

K방산이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몇 가지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방산 수출은 군과 업계뿐 아니라 범정부 차원의 유기적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방산 컨트롤 타워가 중요하다. 전문가들과 업계는 방산 사령탑으로 국가안보실 산하 방산비서관 신설을 주장해왔다.

또 425조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미 국방 조달 시장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산업계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리는 상호국방조달협정(RDP-A) 체결이 시급하다. 국방조달협정은 미 국방부가 동맹국·우방국과 체결하는 양해각서로, 체결국은 미국산우선구매법을 적용받지 않아 미군 등에 조달 제품을 수출할 때 세금 등으로 인한 가격상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국가안보실은 지난달 ‘상호국방조달협정(RDP-A)’ 연내 체결하겠다고 밝혔는데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