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35명은 7일(현지시각) 북한의 비핵화 약속 없는 일방적인 6·25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 서한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앞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에 반대하기 위해 미 의회가 집단행동에 나선 건 처음이다. 전날엔 미국 정부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 보이콧을 선언했다. 종전선언 추진 동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 외교부는 8일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미 공화당 의원 공동 서한 내용을 반박했다. 외교 당국이 다른 나라, 특히 동맹국 입법부 움직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7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35명이 바이든행정부에 보낸 북한의 비핵화 약속 없는 일방적인 6·25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 서한./영 김 의원 트위터

공동 서한 작성을 주도한 한국계 영 김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저는 오늘 34명의 동료와 비핵화와 인권에 대한 김정은의 확실한 보장 없이 진행되는 섣부른 종전선언이 불러올 위험성을 알리는 서한을 바이든 행정부에 보냈다”며 서한을 공개했다.

7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35명이 바이든행정부에 보낸 북한의 비핵화 약속 없는 일방적인 6·25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 서한을 미 공화당 영 김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영 김 의원 트위터

공화당 의원들은 서한에서 “우리는 종전선언이 평화를 촉진하는 대신 한반도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을지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진전이나 북한 주민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 보장 없이 일방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 협정을 추진하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이어 “종전선언은 한반도의 미군과 지역 안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며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하기 전에 미군의 한반도 철수를 고려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은 미국 안보에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고 미국⋅한국⋅일본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남한과 미국, 유엔과의 구속력 있는 협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해 왔다”는 점도 지적했다.

미국은 종전선언 논의가 처음 시작된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선(先) 비핵화, 후(後) 종전선언’ 입장을 견지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이후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을 때도 미 조야(朝野)에선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한 후 두 달여간 한·미가 20차례 가까이 고위급 회담을 했지만 미 측이 회담 결과를 담아 발표한 서면 자료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정부는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마지못해 종전선언을 논의는 하되 북한에 악용될 소지를 없애기 위해 안전장치를 두겠다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의회에서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지면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8일 언론 브리핑을 자청해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주둔과 유엔사 지위와 전혀 무관하다”며 공화당 의원들 주장을 반박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특정 국가의 의회 내 움직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논평하는 건 외교 관례에 맞지 않고 또 적절하지도 않다”고 시인하면서도 반박을 이어갔다.

이 당국자는 브래드 셔먼 등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23명이 지난달 북·미 대화 재개와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서한을 미 정부에 전달했다는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며 “미국 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 있게 다뤄주면 좋겠다”고 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외교부가 일단 국내 여론의 부정적 보도를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라 보고 언론 브리핑을 자청한 모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