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 당국이 최근 ‘일선 부대 대대장(중령급 지휘관)들을 잘 보살피라’는 취지의 공문을 사단장급 이상 장성(將星) 지휘관들에게 보낸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올 들어 ▲경계 실패 ▲부실 급식 파동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등 군 내 사건·사고가 빈발하면서 일선 대대장들의 지휘 부담이 극도로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군 당국은 공문에서 “대대장 30% 이상이 복무 염증을 느끼고 있다”며 “MZ 세대 병사들을 관리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7월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 이후 군 제보 채널인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나 청와대 국민 청원 등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된 병사들이 ‘민원성 협박’을 하는 데 대해 대대장들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성규

군 소식통에 따르면 한 병사는 대대장에게 “마음의 편지 건의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했다. 손가락을 다친 병사 아버지가 대대장에게 전화해 “1분 안에 조치 결과를 내게 보고하지 않으면 외부에 폭로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육군 관계자는 “요즘 병사들 눈에는 사단장도 ‘아저씨’로 보인다”며 “청와대 국민 청원 앞에서 대대장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라고 했다. 내부 제보를 통해 군의 고질적 부조리가 개선된 경우도 많지만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병사들이 의도를 갖고 반복적으로 ‘아니면 말고’식으로 투서해 대대장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계속 생긴다”며 “고충 처리 제도를 정비하고 지휘권을 확립할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특히 청와대 국민 청원이나 육대전 제보가 나올 경우 지휘관 문책부터 하는 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보 진위(眞僞)와 관계없이 감찰이나 조사 등을 받으면 부대 업무가 사실상 마비된다. 제보가 음해성으로 밝혀진 이후라도 대대장 지휘권은 이미 무너진 뒤라는 것이다. 군 안팎에선 “이러다가 대대장 탈영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상급 부대 검열·점검을 40여 차례 받은 대대장도 있다.

한 야전 대대장은 부실 급식 파문 이후 직접 병영 식당을 청소하고 있다. 오이 무침 등 반찬 조리에 직접 나서는 대대장도 있다고 군 당국은 밝혔다. 수백 병사가 생활하는 대대 구석구석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대대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육군 관계자는 “군의 현 상황에선 대대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지휘, 교육·훈련, 부대 관리, 급양 감독 등 1인 다역을 할 수밖에 없다”며 “몸이 열이라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탓에 지난 7월 중령 진급 발표가 난 진급 예정자들이 교육받는 ‘대대장반’ 분위기도 과거와 달리 침울하다고 한다. 한 진급 예정자는 “과거엔 대대장 보직이 ‘지휘관의 꽃’이라 할 정도로 직업군인의 명예와 긍지를 나타냈는데 지금은 ‘기피 보직’이 됐다”고 했다. 진급 예정자들은 “우리는 2년 임기 동안 사고가 나면 언제 보직 해임될지 모르는 ‘집행유예’ 상황”이라고 말한다. 실제 전임 대대장이 사고로 보직 해임돼 대대장반 교육도 마치지 못한 채 임지로 나가는 진급 예정자도 있다. 한 일선 대대장은 “민원과 문책이 두려워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병력 자원 감소, 사회 문화 변화로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예측됐는데 군 상층부가 그간 안이하게 대처했다”며 “더는 군에 해결을 떠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대책을 고민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