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채용 특혜’ 논란으로 작년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사퇴한 데 이어 25일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까지 연달아 똑같은 이유로 퇴진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 전·현직 선관위 직원들은 “일생을 바쳐 헌신했던 선관위가 이 지경이 되니 참담하다”는 분위기다.

선관위 관계자 A씨는 26일 본지에 “고위직 3명의 잇따른 자녀 채용 논란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도덕적 기준이 다 무너진 것 같다. 피나는 자정을 하지 않으면 누가 선거 결과를 믿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국회 국정감사와 감사원 회계 감사 외에는 외부 통제를 전혀 안 받는다”라며 “(앞으로) 이번 같은 부정 사례가 하나라도 발생하면 공정한 선거 관리 자체에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북한 해킹 위협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 점검 권고를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선관위가 최초 거부한 데 대해서도 “부정 선거를 한 게 없는데 시스템을 들여다본다고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이 침해될 게 뭐가 있느냐”고 했다. 또 “언제든 누구든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전제돼야 선관위 스스로도 더 엄정한 내부 잣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현재 선관위의 드러나지 않은 문제는 정권에 따른 ‘파벌’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 편향 인사가 들어오는 순간, 그러지 말아야 하는 선관위 ‘늘공’들조차 줄을 서고 파벌이 나뉘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 문제”라며 “이런 (정치적인) 사람들이 선관위에 들어오면 대통령 입맛에 맞게 모든 선거 업무를 농단한다”고 했다.

실제 문재인 정권이던 2018년 10월 김대년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차기 선관위 상임위원은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선관위 내부 출신이 아닌 덕성과 품성을 갖춘 중립적인 외부 인사께서 오시면 고맙겠다”고 사퇴의 변을 남겼다. 당시 선관위 안팎에서는 “정치 편향 인사들로 인한 선관위 내부 파벌 갈등이 오죽하면 저런 말이 나오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듬해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 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씨를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해 극심한 정치 편향 논란이 일었다.

선관위 내부 직원들도 들끓고 있다. 선관위 한 직원은 이날 내부 게시판에 “전임 총장이 (자녀 문제로) 사퇴하고 나서 역시나 자녀들이 (선관위에) 있는 고위직들이 새로운 총장·차장으로 바뀌는 걸 보고 정말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자정 능력은 전혀 없구나’ 직원으로서 국민으로서 안타깝다”고 썼다. 직원들은 이미 현직 총장·차장의 자녀 채용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직원들도 “법치를 외치면서 이런 절차 하나도 못 지키면 무슨 공정 선거 관리인가. 고위직은 당연히 아빠 찬스로 보인다” “아빠 찬스 내역을 모두 밝혀 공개해야 한다” 같은 비판 글을 올렸다.

한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6건의 (선관위 고위직 자녀) 임용 사례를 살펴보면, 임용 후 승진까지 한 사례가 6건 중 5건으로 파악된다”며 “임용은 물론 승진에서도 ‘아빠 영향력’이 행사된 것으로 보이는 의혹 사례가 있다”고 했다. 박찬진 사무총장 자녀는 6개월 만에 8급으로, 송봉섭 사무차장 자녀는 1년 3개월 만에 7급으로, 김세환 전 사무총장 자녀는 6개월 만에 7급으로 승진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자녀 채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와 노태악 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