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공직자 재산 공개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재산 은닉 수단으로 쓰일 수 있고 이해 충돌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의 법안도 2018년부터 발의됐다. 하지만 여지껏 처리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 가상자산을 재산 공개의 ‘구멍’으로 만들어 놓고, 이를 방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상화폐 일러스트. /연합뉴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2월 ‘가상자산과 관련한 공직 부패의 우려와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최근 가상자산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공직자에게 가상자산과 관련한 이해 충돌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코인 등을 가지고 있는 공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나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현금부터 예금·주식·채권·금·보석류·골동품·회원권 등을 모두 신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가상자산에 대해선 관련 규정이 없다.

예를 들어 주식과 부동산의 경우 ‘공직자 윤리법’과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법’ 등을 통해 2중 3중으로 규제를 받고 있다. 특히 주식의 경우 이해 충돌 우려가 있을 경우 백지 신탁을 하도록 해 사실상 매각을 강제하고 있을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한다. 부동산의 경우 문재인 정권에선 다주택자 공무원들을 상대로 집을 팔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현재 공직 사회에서 가상자산 관련 이해 충돌을 막기 위한 견제장치는 기재부와 금융위, 검찰·경찰청 등 16개 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행동 강령’ 정도다. 예를 들어 금융위원회의 경우 공무원 행동 강령에서 직무와 관련됐을 경우 ‘가상통화’ 보유를 위원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재산 등록을 하지 않으면, 실제 담당자가 코인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명확히 확인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입법조사처는 “가상자산 관련 이해 충돌이 현재 16개 기관에서만 발생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이 공직자 전체에 대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미국은 재산 등록 의무가 있는 공직자가 1000달러 이상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거나, 가상자산을 통해 200달러 이상의 소득을 얻으면 이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가상자산의 종류를 밝혀야 하고, 거래소를 통해 보유하면 거래소까지 함께 기재해야 한다. 또 미 행정부 각 기관의 윤리담당관은 소속 공직자의 직무가 그들이 보유하는 가상자산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고, 해당 공직자에게 잠재적인 이해 충돌의 위험을 알리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직자가 자발적으로 공개할 경우 보유 여부를 알 수 있다. 대통령실 박범수 농해수비서관은 올 3월에 공개한 재산 내역에서 배우자 명의의 ‘현금’ 항목으로 비트코인 150만원을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고위 공직자와 가족의 가상자산 소유가 재산 공개를 통해 알려진 것은 박 비서관이 첫 사례라고 한다.

가상자산 재산 공개 관련 법안은 2018년 정동영 전 의원이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후 여러 건이 나왔다. 21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김한규·민형배·신영대·이용우 의원 등이, 국민의힘에선 유경준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대체로 1000만원 이상의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재산 공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관련법들은 대부분 상임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는 가상자산을 어떻게 볼 것인지 법적인 개념 규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국회는 지난 25일 가상자산 관련 법을 소위원회에서 통과시키며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 기준은 법안에서 뺐다. 코인을 증권으로 보면 주식 등 다른 금융상품처럼 규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코인은 증권이 아닌 ‘상품’일 뿐이란 의견도 많다. 국회 관계자는 “명확한 법적 개념 규정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상자산은 재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일단 재산 등록을 하는 방안을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