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뉴스1

전임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장 ‘알박기’ 인사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여야(與野)가 해법을 두고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공공기관장이 새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자진 사퇴하는 게 맞는다”는 입장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임기는 원칙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여야 모두 대통령 임기에 맞춰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괄 조정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은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9일 본지 통화에서 “매 정권마다 반복됐던 일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점이 개탄스럽다”며 “법 개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긴 하지만,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자진해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상 맞는다”고 했다. 현재 국회 원 구성이 지연되면서 법 개정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공기관장들이 자진 사퇴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들을 강제로 물러나게 하는 건 직권 남용이기 때문에 해선 안 되는 일이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 들어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등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그 외의 공공기관장들 사이에선 버티기 기류도 감지된다. 권 원내대표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신인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을 언급하며 “이들은 전임 정부 기조를 하나부터 열까지 수행했던 분들인데, 새 정부에서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고 했다.

권선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국민의힘은 법 개정도 추진할 예정이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은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때에 공공기관장의 임기 또한 만료된 것으로 간주하고, 기관장의 임기 및 연임 기간을 각각 2년 6개월로 해 대통령의 임기인 5년과 일치시킨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할 계획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 공공기관장 임기 또한 끝나게 돼 차기 대통령은 새 기관장들을 모두 임명할 수 있게 된다. 또 기관장 임기를 2년 6개월로 통일시켜 연임해도 대통령 임기와 같은 5년만 채우도록 조정했다. 정 의원은 “공공기관의 임기 불일치 문제는 정권 교체기마다 현실과 법 간의 괴리가 발생하고, 정부 정책과 실행기관인 공공기관 사이의 정책 미스 매칭을 야기하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에서도 이러한 법 개정에 반대하지는 않는 기류다. 민주당도 지난 문재인 정부 초반 대통령의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연동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다만 법안의 시행은 문재인 정부가 아닌 차기 정부 이후로 넘겼다. 민주당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된 우상호 의원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기관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임기가 보장돼야 하는 것도 맞고,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반영한 사람이 기관장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맞는다”며 “현행 2~3년인 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인 5년에 맞게 2년 6개월 등으로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우 의원은 법 개정 전까지는 현재 공공기관장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 일부 장관이 임기가 끝나지 않은 기관장을 바꾸려다가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나”라며 “기관장 본인들이 알아서 그만두는 건 몰라도 사퇴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산업부·환경부 등에서 임기가 끝나지 않은 기관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있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임기가 끝나지 않은 산하 공공기관장에게 일괄 사직서를 받은 혐의로 문재인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인 김은경 전 장관 등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다. 산업부 백운규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