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31일 언론중재법의 본회의 상정을 오는 9월 27일로 미루고 8인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했다. 여야가 ‘한 달 휴전’ 기간을 갖고 언론법 협상을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큰 틀은 유지해야 한다”는 민주당과 “독소 조항을 철회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간 이견이 여전해 최종 합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여권에서는 “처리 시기가 한 달 연기됐을 뿐 법안을 처리한다는 입장은 바뀐 게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국신문협회⋅한국기자협회⋅관훈클럽 등 언론 7단체는 “누더기 악법이 된 언론중재법안은 폐기하고 원점에서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법안 폐기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오른쪽)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김기현(왼쪽) 원내대표가 31일 박병석(가운데) 국회의장 주재로 국회에서 만나‘언론중재법을 9월 27일 본회의에 상정, 처리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 당 의원 2명씩 4명, 각 당이 2명씩 추천한 언론계·법조계 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8인 협의체’도 만들기로 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만나 ‘언론중재법을 9월 27일 본회의에 상정, 처리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여야는 각 당 국회의원 2명, 각 당이 추천한 언론계·법조계 등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양당은 “9월 초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야가 최종 합의를 통해 법안을 처리할지는 불투명하다. 윤 원내대표는 ‘법안을 원점 재검토하느냐’는 질문에 “본회의 처리를 위한 수정안이기 때문에 기존 법안의 범위를 벗어나서 수정안을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 원내대표는 “3개 조항(징벌적 손해배상, 열람 차단 청구권, 고의·중과실 추정)은 무조건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 7단체는 “악법은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분칠을 해도 악법일 뿐”이라며 “누더기 악법이 된 언론중재법은 폐기하고 원점에서 숙의 과정을 거치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언론 단체들은 “다음 달 27일 합의를 못 하면 언론재갈법을 그대로 강행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언론 자유 신장과 피해자 구제 강화 방안을 충분히 논의하는 데에 적절치 않기에 처리 시한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중재법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각 당 국회의원 2명, 각 당이 추천한 언론계·법조계 등 전문가 2명으로 꾸려지는 '8인 협의체'에서 다룰 언론중재법 쟁점 조항. /조선DB

국민의힘은 언론사에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조항은 언론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철회 1순위’로 꼽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실질적 피해 구제라는 취지가 담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라며 반드시 존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인터넷신문이나 포털에서 기사가 노출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열람 차단 청구권 조항도 민주당은 기본 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당과 사회 각계에선 권력 감시·비판 보도를 막는 사전 검열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문제가 되는 3가지 조항 중 ‘고의·중과실 추정’의 경우 이번 협상을 통해 삭제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이 조항은 보복·반복적인 허위·조작 기사 등을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이라고 ‘입증’하는 게 아닌 ‘추정’하도록 하면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의 ‘삭제 합의’ 주장에 대해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법안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협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언론중재법과 관련해 우려를 표한 공문이 당·정·청에 전달된 것이 향후 논의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표현 자유 침해 논란’에 대한 입장을 국제사회에 공식 표명해야 하는 상황을 맞으면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개정안의 본래 취지가 훼손됐다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김용민 의원은 “법안 후퇴가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며 “앞으로 무척 소란스러운 한 달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전국언론노조 등은 성명에서 “양당 간 합의는 예상되는 충돌과 강행 표결 처리를 한 달 뒤로 미룬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며 “‘밀실 협의’가 아닌 ‘광장’에서 사회적 합의를 시작하자”고 요구했다. 여기에 포털의 뉴스 편집권(신문법), 공영방송 지배구조(방송법), 유튜브·1인 미디어 규제(정보통신망법) 법안은 협의체가 아닌 각 상임위에서 논의되는 만큼 관련 상임위에서 여야 충돌이 재연될 수 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에 있는 유튜브 등 법안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며 “정기국회 안에 협의해서 같이 처리해야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