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에서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발언하고 있다. 정 초대 청장이 문 대통령의 격려 발언을 들은 뒤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다./뉴시스

보건 당국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네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추경)과 내년도 예산 정부안(案)에 단 한 번도 ‘백신 구입비’를 편성하지 않았던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또 질병관리청은 코로나 확산세가 극심했던 지난달 초순까지 어떤 종류의 백신을 구입할지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야당은 “K방역 홍보비는 펑펑 쓰면서 정작 온 국민의 생명이 걸린 코로나 백신에는 세금을 아끼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실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건 당국은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1차, 2차, 3차, 4차 추경 정부안에 백신 구입비는 따로 편성하지 않았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도 당초 코로나 백신 구입비는 ‘0원’이었다.

코로나 백신 구입비는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뒤늦게 반영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與野) 의원들이 “코로나 백신 예산만큼은 편성되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항의한 데 따른 것이다.

야당은 “최근까지도 우리 보건 당국이 코로나 백신 확보에 안일하게 대응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달 4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어떤 백신을 구매할지에 대한 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불확실성이 커서 내년에 예비비나 추경으로 예산을 확보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백신을 선정할 건지에 대한 부분과 가격에 대한 부분 두 가지가 불확실하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하루 뒤인 지난달 5일 열린 예결심사 소위에서도 “국민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코로나 백신 구입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그러자 나성웅 질병관리청 차장은 “코로나 백신 예산은 저희들이 충분히 수용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결국 4차 추경(1839억원)·내년도 예산(9000억원) 수정안에 코로나 백신 구입비가 편성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우리 국회에서 이 같은 논의가 이뤄질 무렵 미국·영국에서는 첫 백신 접종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연합뉴스

이종성 의원은 “통상 국회는 불필요한 예산은 삭감하려 하고, 정부 측에선 증액하려고 버티는데 코로나 백신 구입비만큼은 정반대로 돌아갔다”면서 “국회가 거의 애걸하다시피 코로나 백신 구입비에 매달렸지만 보건 당국은 도리어 여유를 부렸다”고 했다. “정부가 ‘K방역 홍보쇼'에만 몰입하다가 코로나 백신 골든타임을 놓친 것 아니냐”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