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며 머리를 만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8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문제와 관련, “(공수처 출범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며 국민의힘을 압박하고 나왔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이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는 오는 26일까지 야당 교섭 단체 몫 공수처장 후보 추천 위원 2인을 선정하지 않으면 야당 추천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대선(大選) 출마를 공식화하기 전 당 대표로 확실한 성과를 내기 위해 공수처법을 필두로 ‘입법 드라이브’를 예고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 긴급 연석회의를 열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공수처) 법도 정해졌고 사무실도 마련됐는데 사람을 보내지 않아 일을 못하는 상태”라며 “법을 지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좌우되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석 달 가까이 되고 있다”고 했다. 공수처법이 지난 7월 15일 시행에 들어갔지만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선정에 협조하지 않아 출범이 미뤄지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7일 당 지도부 회의에서도 “기다림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가 공수처 설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하자, 국회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국감이 끝날 때까지 국민의힘이 추천 위원을 추천하지 않으면 공수처법 개정안을 즉각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통첩성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갖고 있는 공수처장 추천위원 2명 ‘추천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한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 대표는 공수처 설치뿐 아니라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도 정기국회 안에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경제 3법에 대해 재계에서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지난 6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해 기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대표가 각종 현안의 ‘신속 처리’를 강조하는 것을 두고 민주당 안에서는 “대표 임기 안에 뚜렷한 성과를 내고 본격적으로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차기 대선 경선에 나서려면 대선 1년 전인 내년 3월엔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 임기가 6개월도 채 안 남은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수처 설치나 경제 3법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라며 “이 대표로서는 이 사안들을 임기 안에 매듭지어 친문(親文) 지지자들의 지지를 확보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전방위 압박에 나섰지만,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법 개정 시한까지 공표하는) 일방적인 민주당의 요구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공수처장 임명보다) 문재인 정부가 4년째 비워둔 북한 인권재단 이사, 특별감찰관 추천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관계자는 “공수처 출범에 앞서 공수처법의 위헌 여부를 계속 다투되, 민주당의 법 개정 움직임에 맞춰 대응 전략도 마련 중”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짜놓은 일정대로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경제 3법 처리와 관련해 “노동법 개정을 하지 않으면 정부가 내세운 한국판 뉴딜도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경제 3법 개정과 관련해 “노동법도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려면 노동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다”며 경제 3법과 노동법의 동시 논의를 거듭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