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이 경선 여론조사 때 여권 지지층을 조사 대상에 넣을지 말지를 두고 연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측은 “여론조사 대상에서 여권 지지층을 제외하는 ‘역선택’ 방지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측은 “역선택 방지 운운하며 경선 룰을 고치면 파국”이라고 맞서고 있다.

국민의힘 주자들이 사생결단식으로 맞서는 까닭은 여론조사 대상에 여권 지지층을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주자별 지지율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 측은 “여권 지지자들이 야권 지지율 1위인 윤 전 총장을 떨어뜨리기 위해 홍준표·유승민을 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홍 의원과 유 전 의원 측은 “역선택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오히려 정홍원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이 윤 전 총장을 위해 경선 룰을 변경하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정홍원 위원장은 1일 후보 측 대리인들을 소집해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과 관련한 의견을 들었다. 선거관리위에 앞서 경선 룰 초안을 마련했던 경선준비위원회는 본경선에서 50%가 반영되는 여론조사 때 응답자의 지지 정당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경선준비위 안(案)은 확정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지 않기로 한 경선준비위 결정을 변경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문제는 후보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후보들이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문제에서 합의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 윤 전 총장과 다른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두 자릿수 정도로 벌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여야 대선 주자를 모두 포함한 여론조사에선 윤 전 총장이 다른 국민의힘 후보를 두 자릿수 지지율 차로 앞서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후보만 두고 조사하면 윤 전 총장과 2위를 달리는 홍 의원 간 격차가 한 자릿수로 좁혀진 결과가 여럿 있다. 윤 전 총장은 여권 지지층 사이에서 홍 의원과 유 전 의원보다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권성동 의원은 “‘대깨문(강성 친문 지지층)’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본선에서 경쟁력 있는 윤 전 총장을 피하고 싶어 하는 여권 지지층이 조직적으로 홍·유 두 사람 중 한 명을 지지한다고 응답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홍 의원이나 유 전 의원 측은 “외연 확장성을 역선택이라고 오도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국민의힘 지지층이라고 윤 전 총장만 지지하지 않듯 여권 지지층이 선호한다고 해서 반드시 역선택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들은 윤 전 총장이 손쉽게 경선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 검찰 선배 출신인 정홍원 위원장을 움직여 경선 룰을 입맛대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유 전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지난 8월 정 위원장에게 인사를 간 것을 거론하며 ‘밀약’ 의혹도 제기했다.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문제를 둘러싼 후보 간 갈등은 더 첨예해질 공산이 크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여론조사 때 ‘정권 교체를 원한다’고 응답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조사하거나, 여권 지지층을 조사 대상에 넣은 여론조사와 그렇지 않은 여론조사를 병행한 뒤 합산하는 방안 등을 절충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은 원칙론을 거론하는데 이는 역선택이 작동하고 있다면 시정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반면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은 역선택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근거가 없다며 맞서고 있어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두 달여간 진행되는 경선 과정에서 변수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윤 전 총장이나, 어떻게든 그를 따라잡아야 하는 홍 의원이나 유 전 의원이나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문제가 국민의힘 경선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