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 동북아 전문가로 ‘박정희 시대’를 집필한 에즈라 보겔(89)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에즈라 보겔 미 하버드대 명예교수. /트위터

21일 미국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보겔 교수는 수술 후 합병증으로 인해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1964년부터 하버드대에서 교편을 잡은 보겔 교수는 미 학계에서 최고의 동아시아 전문가로 꼽혔다. 그의 저작들은 서구 지성인들이 현대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프리즘을 제공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겔 교수는 1958년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의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일본어를 배우며 중산층 가정을 직접 방문해 가족 구성원들을 인터뷰했다. 발로 뛰어 얻은 그의 연구가 1963년 발간한 ‘일본의 신(新) 중산층’에 담겼다. 또 1987년에는 8개월 동안 중국에 체류하면서 중국 경제의 개혁 과정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동아시아 연구는 한국으로도 이어졌다. 1965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갔으며 1972년부터 하버드대 동아시아 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한국인 제자들도 길러냈다. 1991년 발간한 저서 ‘네 마리의 작은 용(The Four Little Dragons): 동아시아에서의 산업화의 확산’에서 유교 윤리가 접목된 동양식 자본주의 정신이 아시아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이론을 주창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보겔 교수는 지난 2011년에는 ‘박정희 시대(원제 The Park Chung Hee Era)’를 펴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 국가발전의 기초를 놓은 점에서 중국 덩샤오핑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뉴욕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박정희는 전두환·노태우 등과 달리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계속해서 경제를 배워가는 비상한 능력도 지녔다”고 했다.

보겔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은 넓은 비전을 갖고 박정희 시대에 불가능했던 진전을 이뤄냈지만 그가 1961년에 집권했다면 박정희와 같은 경제발전을 이뤄냈을지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남덕우·김정렴·김경원 등 우수한 관료들을 훌륭이 활용했다고도 평가했다.

미 학계 내 대표적인 지한파인 보겔 교수는 지난 2015년에는 일본 전공 학자 186명과 함께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를 향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정하거나 하찮게 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