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는 망명 후 한국행을 택한 최고위급 북한 외교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재작년 11월 그가 로마에서 잠적한 뒤 그의 행방을 놓고 갖은 설이 제기됐다. 미국, 유럽 또는 제3국에 망명했을 거란 추측이 난무했다. 당시 남북 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한국행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이미 지난해 7월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한국에 온 북 고위급 탈북자

정부 고위 관계자는 “조 전 대사대리 부부가 이탈리아에서 잠적한 이후 서방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걸어 들어와 망명을 신청했다”면서 “모든 탈북자의 한국 망명은 이런 형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조 전 대리대사가 미국이나 서방 국가, 자유조선 등의 보호하에 있다가 이들의 권유에 따라 한국 대사관을 찾아 망명을 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조 전 대사대리 부부가 귀임을 눈앞에 둔 2018년 1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잠적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제사회에선 갖은 추측이 나왔었다. 외교가에선 그가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지 않는 유럽 국가나 미국같이 대북 정보 수요가 많은 나라를 택해 망명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탈리아의 북한 공관은 김정은 등 최고위층을 상대로 사치품, 이른바 ‘1호 물품’을 상납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치품 밀수 루트나 엘리트 동향 같이 고급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에게 미 정보기관이 매력을 느꼈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또 그의 잠적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문재인 정부는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 등 강력한 대북 드라이브를 걸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고위급 외교관의 한국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국가정보원도 당시 국회 보고에서 “잠적된 두 달간 (우리 당국이) 어떤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이런 예상을 깨고 그가 한국행을 택한 것에 대해 대북 소식통은 “조 전 대사대리도 태영호 전 영국 공사(국민의힘 의원)처럼 한국행을 희망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1월 그와 친분이 깊은 태 의원이 공개적으로 한국행을 권유한 것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태 전 공사는 “내 친구 성길아! 서울로 오라”며 공개 편지를 블로그에 올렸었다.

여권 관계자는 “조 전 대사대리는 당초 미국 망명을 원했는데 미 당국이 한국행을 권해서 방향을 바꿨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미측과 처우 등을 협상하다 여의치 않자 한국행으로 틀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11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뒤 북한 대사급 외교관이 망명한 사례는 조 전 대사대리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의 최측근이던 황장엽 전 비서와 태 전 공사에 이어 조 전 대사대리까지 한국행을 택하면서 북한 엘리트층이 또다시 동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이 향후 남북 관계에도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북한 핵실험에 따른 유엔 제재로 문정남 주이탈리아 대사가 추방당하자 대사대리를 맡았을 정도로 실무 능력을 인정받은 인사다. 대북 소식통은 “해수부 공무원 총격 피살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 빠진 상황에서 그의 한국행 소식에 북한이 더 강경한 태도로 돌아설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