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 한·일 간을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던 2018년 여름, 무려 98세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일본에서 우리 커피점까지 건너오셨다. 역대 방문 고객 중 최고령 기록 보유자다.

어르신을 모셔온 여자분 O씨는 커피점이 오픈한 지 얼마 안 되는 2010년쯤 유학을 위해 근처에 머물렀고 저녁때 가끔씩 찾아왔던 손님이다. 그들은 멀리 일본 지방 도시인 가가와(香川)에서 오셨고, 할아버지 외에 O씨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두 분도 함께 있어서 4명이었다. 여행의 주 목적은 침과 마사지를 비롯한 한방 치료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3박 4일 여행 중 하루는 광장시장을 산책할 예정이었으나 전날 받은 침 치료가 너무 좋아서 시장 투어를 취소하고 계속 한의원만 돌아다녔다고 한다. 함께 온 지인 남자분들이 한국의 음악 문화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음원도 팔고 가끔 공연도 하던 우리 커피점을 떠올려 차를 마시러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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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아주 건강해 보였다. 호지차(녹차의 일종)를 천천히 마시면서 흥미롭게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고,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말을 걸었더니 확 꽃피는 듯한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나는 나의 98세 모습을 상상조차 못 하지만, 그 나이가 되어 고향을 나가 세계를 보려고 하는 마음이 멋지시다고 생각했다. 또 그 마음을 받쳐주는 가족의 존재도 역시 멋졌다.

한국의 음악 문화라는 테마로 나는 홍대 인디 음악이 아니라 가보지도 못한 품바 축제에 대해 동영상을 보여주며 아슬아슬한 지식으로 설명했는데 그들은 아주 좋아하는 모습이었고 할아버지는 그 옆에서 조용히 부처님처럼 미소를 짓고 계셨다. 늦은 시간까지 흥미진진하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던 그들은 막차가 가까운 것을 알게 되자 왔을 때처럼 서둘러 커피점을 떠났다. 나갈 때 O씨는 역시 서둘러 “사장님한테 선물을 가져왔는데 호텔에 두고 왔으니 내일 택배로 보낼게요”라고 말했다.

보내온 선물은 과자였다. 감사 메일을 그녀에게 보냈으나 바로 대답이 없었는데, 가을이 되어 조금 쌀쌀해졌을 무렵 답장이 왔다. 놀랍게도 일본에 귀국하고 얼마 안 돼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한때는 휠체어 없이 상큼상큼 걸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아졌으나 갑자기 일어날 수 없게 되었고 그대로 천수를 다하셨다고 한다. 어떤 한국인 친구가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말을 알려줬는데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메일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런데 저에게도, 두 지인에게도, 그리고 아마 할아버지에게도 서울에서 지낸 시간은 둘도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두 번 다시 없을 멤버를 위한 다시 없을 한 장면에, 아메노히커피점과 시미즈씨 부부가 있어주신 것이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추억 한 장면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도 큰 영광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어딘가 비일상적이고 다정한 저녁과, O씨에게 휠체어를 밀리며 상큼 떠나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 후 O씨는 동남아 노동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코로나 시대를 거쳐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른다. 남자분들은 언젠가 품바 축제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언제가 될까. 아무튼 그 특별하고 신기한 문화를 내가 먼저 체험하고 다음 그들과 만났을 때는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모든 순간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지만, 이 커피점만은 가능한 한 변함없고 아무렇지 않은 공간으로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