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을 운영하여 유익한 장점 가운데 하나는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뜸 찾아와 “세상이 왜 이러죠?” 하더니 시국을 성토하는 단골손님의 명연설을 듣고, 딸보다 어린 알바생과 계산대 안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100분 토론을 벌이기도 하며, 인근 치킨집·미용실·노래방·족발집 사장님과 어울리며 평범한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거창한 분석까지는 아니어도 민심의 풍향 정도는 말할 수 있으리라.

8월 26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광주자영업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영업제한 방역 지침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의미에서 작년 총선은 신기했다.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지나치게 승리를 자신하는 것 아닌가. 물론 지지층 독려를 위해 그런다지만, 패할 것 같은 선거에 자신만만한 태도가 의아했다. 1개월 전까지는 야당의 승기가 확실했다. 오죽하면 약삭빠른 여당 의원 몇 명은 미리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나. 하지만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뒤집었다. 갑작스러운 역병은 초반엔 야당에 호재 같더니 급격히 여당 쪽으로 기울었다. 폭풍우로 휘청이는 선박에서 “선장 바꾸라” 호통칠 승객이 얼마나 될까. 일단 믿고 따르는 수밖에. 그런 와중에 야당은 ‘밉상’ 정치인만 골고루 골라 수도권에 공천했고, 세월호 텐트가 어떻다느니 3040은 논리가 없다느니 ‘매를 버는’ 발언만 이어갔다. “그럼 그렇지, ‘걔들’은 변하지 않아.” 이것이 보통 사람의 일반적 시선이었다. 무능 부패한 여당이 심판받아 마땅한 선거에 야당이 심판받았다. 103석도 용케 건졌다.

지금 국민의힘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정치권에 심각한 이슈도 국민은 별 관심이 없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블랙홀처럼 삼킨 지 오래다. 방송 뉴스를 봐도, 절반가량은 ‘코로나’만 줄곧 이어진다. 국민은 살아야겠다는 각성만 남았다. 적당히 힘들면 봉기라도 할 텐데, 너무 힘들면 주먹 그러쥘 여유조차 사라진다. 민주노총 아닌 국민은 집회의 자유마저 빼앗긴 지 오래다. 며칠 전 정부에서 지급한 자영업자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인건비·임대료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어쨌든 이 시국에 ‘그냥 생긴’ 돈이니 고마울 따름이다. 개념 없다 꾸짖지 마시라. 솔직한 민심이 그렇다.

국민의힘은 정권 교체를 자신한다. 그러나 1개월 뒤도 알지 못한 사람들이 6개월 뒤 벌어질 일을 과연 어떻게 알까. 백신 접종률, 위드 코로나, 코로나 변이, 부스터샷, 재난지원금 등에 따라 민심은 또 얼마든 뒤바뀔 것이다.

어쩌면 국민의힘은 자영업자들의 정당 아닐까. 정치판 말고 갈 곳 없는 ‘민주 건달’(진보 인사 홍세화의 표현)들의 영리 집단이 민주당이라면, 정치 아니라도 할 것 많은 상위 1% 자영업자의 사교 클럽이 국민의힘이다. 정권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눈빛으로 질겅질겅 껌 씹는 건달이 있는가 하면, 변호사든 평론가든 하면 된다는 여유로 실실거리는 웰빙이 있다. 사람은 배가 고파봐야 정신을 차린다는데, 그런 측면에서 국민의힘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태생적 조건을 갖지 않았나 싶다. 언제나 각자 배부른 사람들이다.

지금 정부는 국민을 조련(調練)하는 느낌이다. 일부러 힘들게 만들고, 말 잘 들으면 보상하는 식으로 길들이는 것 아닌가 하는 뾰족한 반감마저 든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지칠 대로 지친 민심의 현주소다. 얼른 이 국면을 벗어나야 정상 승부가 가능할 텐데 결국 다음 대선도 비정상적 상황에서 ‘관중 없는 경기’를 치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까? 기대를 모았던 젊은 당대표는 심판이 아니라 차세대 선수로 주목받고 싶은 것 같고, 오늘도 야당은 정권 교체 기도문만 습관처럼 되뇐다. 작년 총선 투표일 저녁 풍경을 또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