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9월 열린 ‘신정부 소득 주도 성장 및 증세 정책 평가와 전망’ 토론회에서 학자들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저소득층 소득이 늘고 분배가 개선돼 성장이 이뤄진다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허구라고 경고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가격에 대한 직접적 개입은 시장의 효율적 분배에 왜곡을 초래하므로 되도록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는 정책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대일 서울대 교수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증 결과와 전혀 맞지 않고 거꾸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은 불평등 개선 효과가 없고 오히려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게 대부분의 연구 결과”라고 했다.

비슷한 지적을 하는 전문가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이 정부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2년 연속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을 강행했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이 정권이 지난 4년 내내 전문가를 무시했다는 사실은 전혀 비밀이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륜이 필요한 자리에 운동권과 캠프 출신 낙하산 인사를 앉히고, 설령 학자 출신이더라도 코드에 맞춰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사람만 골라 썼다. 원자력 관련 기관에 환경 단체 출신을 꽂아 넣거나, “백신 수급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기모란 교수를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임명한 것은 일례에 불과하다.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TV에 나와 “전문가들이 국민을 속인 게 한두 번이냐. 전문가 말 들으면 망한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했다. 이런 정서가 집권 세력 사이에 폭넓게 공유돼 있었다.

하지만 이 정권의 전문가 무시 또는 반(反)지성주의가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고 느낀 건 여당이 180석을 차지하고 난 이후다. 임대차 3법 통과 후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전세가 소멸돼 피해가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하자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가격은 주택 가격, 임대 주택의 수요·공급, 물가상승률에 의해 결정된다”며 전세 가격 폭등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윤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이고, 김 의원은 로스쿨 출신이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 없는 김 의원이 경제학 박사인 윤 의원에게 수요·공급을 설교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 이후로 비슷한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통계청장 출신 야당 의원이 만든 자료를 두고 “제가 대학원에서 통계학을 우스운 학점으로 이수했지만 이건 지구상에 없는 통계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현재의 코로나 백신은 ‘백신 추정 주사’일 뿐이며, 국민을 ‘코로나 마루타’로 삼자는 것”이라는 황당한 소리를 부끄러움 없이 했다.

미국인 25%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으로 알고, 세 명 중 한 명은 천사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이 최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정권에 상관없이 최고의 전문가를 중용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노골적인 반지성주의자였지만, 전염병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소장이 쓴소리를 하면 꼼짝도 못했다.

우리나라에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재정 건전성 저하가 우려된다”고 하자 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정부 정책에 훈수를 두는 건가. ‘너나 잘하세요’라는 대사가 떠오른다”고 조롱했다. 이런 나라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