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실패 보고서’가 있다면 1장은 광우병 사태였을 것이다. 대선에서 500만표 이상 압승하고, 이듬해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한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이라는 후방 기습에 가드도 못 올린 채 그로기 상태가 됐다.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된다는 선동이 통했다. 공영방송과 좌파 단체, 야당은 치밀했고, 신생 권력은 대선만 이기면 정권 교체라는 착각에 빠졌다.

2008년 6월 8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있다./이태경 기자

대선은 정권 교체의 시작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방송, 좌파 단체, 학계, 노조 등 상부구조는 좌파 5년의 영향권에 있었다. 공영방송이 기름을 뿌리고 좌파 단체와 노조가 촛불을 들고, 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며 불꽃이 튀었다. 70%를 넘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 지지율은 궤멸적 타격을 입은 채 허우적댔다. 광우병 사태는 민주당에는 추억으로, 국민의힘에는 트라우마로 새겨졌다.

여기에서 ‘광우병의 유혹’이 싹튼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패한 민주당의 재건은 2년 뒤 총선까지 실력을 쌓고 국민 신뢰를 되찾는 것이다. 혁신을 통해 당의 체질을 바꾸고, 다양한 인재를 모아 재정비해야 한다. 야당이 지배하는 지금 국회만큼 정부 견제를 효율적으로 전개할 곳도 없다. 그러나 ‘제2의 광우병 사태’가 가능하다면? 이런 고생스러운 과정 없이 정권 교체의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제2 광우병 기획 세력에게 지금은 2008년보다 좋은 환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 기반이 취약하고, 여당도 소수다. 공영방송에는 지난 정부가 임명한 인사들이 건재하고, 방통위원장도 문재인 사람이다. 이들이 앞장선 이른바 ‘사적 채용’ 논란을 보자. 대선 캠프는 후보와 사적·공적 인연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집권하면 이들은 별정직(어공)이라는 이름으로 직업 공무원인 ‘늘공’들과 대통령실을 구성한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의 단골 디자이너 딸은 청와대에 채용돼 프랑스 여권을 들고 순방에 동행했다. 당시 김어준씨는 “대통령 부인의 체형을 잘 아는 전문가”라고 두둔했다. 정권 실세가 ‘추천’이란 이름의 ‘압력’을 넣은 인사들이 비서실로 안보실로 배치됐고, 누구누구의 자녀도 청와대에 근무했다. 이건 ‘사적 채용’인가 ‘공적 채용’인가. 야당 인사들은 답을 안다. 이랬던 인사들이 지금 ‘사적 채용’ ‘국정농단’ ‘탄핵’ ‘촛불’까지 거론한다. 관행이라고 옳은 건 아니다. 대통령실 채용 시스템은 이번에 정교하고 투명하게 재정비해야 한다. “9급 갖고 뭘 그래” “지난 정부보다 낫다”는 대응은 미국 소고기 안전성만을 강조하며 소통을 외면했던 이명박 정부와 닮았다. 좌파 단체들과 노조도 준비운동을 끝냈다. 좌파 대학생 단체와 공무원노조는 “예비 공무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며 정권 퇴진 구호를 외쳤다. 여기에 민주노총에 경찰까지 들썩이고 여당은 내부 총질로 날을 샌다. 굵직한 불꽃 몇 개만 더 튀면 ‘제2의 광우병’ 조건은 완비된다.

2008년 광우병 사태의 짜릿함에 취했던 민주당은 결국 혁신 대신 장외투쟁에 중독됐고,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로 2012년 대선을 맞이했다. 결과는 패배였고,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고 했다. 약인 줄 알았던 광우병 사태가 독이 됐다. 지금 민주당 앞에는 2개의 길이 놓여 있다. ‘어게인 2008년’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질 것이냐, 혁신으로 실력을 쌓아 수권 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냐. 독 묻은 사과를 덜컥 물고 당장 주린 배를 채울지, 기초 체력을 다지며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