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완화 의료는 수개월 내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 등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여주는 서비스다. 이 중요한 서비스 인프라가 신종 코로나 사태 와중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지난해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88곳 가운데 21곳이 휴업을 했다는 것이다. 국공립 의료기관이 운영해온 호스피스 병상을 코로나 병상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주춤해졌지만 상당수는 아직도 휴업 상태다. 풀가동해도 턱없이(1000병상 이상) 모자라는 판인데 인프라가 무너졌으니 말기 환자들은 어떤 임종을 맞았을까.

그 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통계 수치가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지난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찬성 비율이 76.3%로 높아졌다. 2008년과 2016년 조사에서는 찬성률이 50% 정도였다. 여기에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말기 환자에 해당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경우 ‘조력 존엄사’를 신청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다. 안 의원은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겪어보니 불가피할 경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존엄사)을 시행한 지 이제 겨우 4년이 지났다. 아직 이 제도가 안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안락사는 또 다른 문제여서 도입하기 전에 많은 논의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해야 하고 예상 부작용 등을 면밀히 검토하는 시간과 토론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안락사 찬성률이 높아졌을까.

혹시 호스피스·완화 의료 인프라가 무너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가 코로나 치료와 웰빙에 치중하느라 웰다잉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닐까. 국내 완화 의료 인프라는 원래 부족했다. 지난 2020년 한 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 8만2204명 가운데 23.0%(1만8907명)만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했다. 전체 사망 환자로 따지면 6.2%에 불과하다. 미국은 전체 사망자의 51.6%가, 영국은 암 사망자의 95%가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서비스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병원들이 제공하기를 꺼린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데 대표적인 웰다잉 예산인 호스피스 기관 지원 예산은 올해 96억원에 불과하다. ‘문재인 케어’를 하면서 초음파와 MRI(자기공명영상) 진료비는 지난 4년간 10배가량 늘어 지난해 1조8476억원으로 늘어났다. MRI 예산의 100분의 1(180여억원)만이라도 웰다잉 인프라에 투입했다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안락사 찬성률이 이렇게 높아졌을까. 윤영호 교수는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웰다잉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요구가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김범석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장은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임종을 지켜보았다. 김 센터장은 “제도와 인프라는 발전하는 것이 상식인데 어떻게 완화 의료 인프라는 퇴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여건에서 왜 완화 의료 일을 계속하느냐는 질문에 “눈앞의 환자가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나 스스로가 좀 더 편하게 죽고 싶다”며 “어떻게 보면 나 좋자고, 좀 더 좋은 완화 의료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도 언젠가 맞을 삶의 마무리에서 ‘나 좋자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때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존중받으며 삶을 마무리하는 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