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일반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조선 시대 화가라면 김홍도와 신윤복일 것이다. 두 화가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정조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다. 두 화백은 그 시대의 일상을 담은 그림들을 남겼다. 장터에서 씨름하는 모습과 구경꾼들, 그 옆에 엿을 파는 아이도 보인다. 국밥을 파는 사람, 여인에게 추파를 던지는 선비들, 달밤에 연애하는 남녀, 시냇물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훔쳐보는 스님 등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여과 없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조 시대는 왜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릴까? 이를 이해하려면 선대왕인 영조의 업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영조는 탕평책을 펼치기도 했지만 건축가인 나의 눈을 끄는 업적은 청계천 준설이다. 준설이란 개천 바닥에 쌓인 흙을 퍼내는 일이다. 포클레인도 없던 당시에는 엄청난 노동력과 국가 예산이 드는 큰 토목사업이었다. 영조는 왜 힘들게 청계천 준설 사업을 했을까?

로마제국 시대 로마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아퀴덕트라는 상수도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인구 30만 명의 한양에는 그런 시설이 없었다. 한양은 화강암 암반을 가지고 있어서 땅에 우물만 파도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상수도 건축물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도시에는 하수도 시설도 필요한데, 한양은 청계천을 하수도 시설로 사용하였다. 그렇게 청계천 물은 생활 폐수로 더러워졌다. 조선 초기에는 우물 상수도와 청계천 하수도 시스템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후기에 접어들자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린다. 비가 오면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를 벤 민둥산의 흙이 깎여서 개천으로 흘러들어 간다. 시간이 지나면 그 흙이 개천에 쌓여서 바닥면이 높아진다. 바닥면이 높아지면 조금만 비가와도 물이 넘쳐서 홍수가 난다. 그러면 청계천의 더러운 물이 넘쳐 주변 인가의 우물에 들어가게 되고 식수가 오염된다. 식수가 오염되면 전염병이 발생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런 악순환이 자주 반복되었다.

그런데 영조가 청계천 준설을 하게 되면서 청계천 범람이 줄었고 전염병이 줄었다. 전염병이 줄자 한양의 인구는 폭증했다. 인구가 늘어나니 상업이 활발해졌다. 이때 왕이 된 사람이 정조다. 당시에는 ‘금난전권’이라는 법이 있었다. 이는 일부 상인들만 한양과 주변에서 상업을 할 수 있게 독점권을 주는 나쁜 법이었다. 한양의 인구가 늘고 상업에 대한 수요가 늘자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했다. 이로써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땅이 없어도 누구나 장사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곳곳에서 시장이 열리고 사람이 모이자 국밥집이 생겨났고 씨름 같은 스포츠 이벤트도 생겨났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풍요로운 도시 생활이 만들어졌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그런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림으로 남겼다. 새로운 공간과 삶은 두 화백에게 중요한 그림의 소재였다.

조선에 ‘김홍도’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에드워드 호퍼’가 있다. 호퍼는 쓸쓸하고 외로운 도시 풍경과 외로운 도시민의 모습을 그렸다. 호퍼가 활동했던 시기의 미국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가족과 함께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해 왔다. 시골에서 자연에 둘러싸여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도시의 빌딩 숲에서 삭막한 건물들이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서 살아야 했다. 과거 농사를 지을 때는 여러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도시의 노동자가 되면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자연스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시골에서 낮 시간 동안 햇볕을 받으면서 일을 했다. 그러나 도시로 오자 낮에는 햇볕이 없는 실내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하고 퇴근 후 밤에는 가로등 불빛 속 카페에 홀로 앉아있어야 했다. 호퍼는 이 모든 새로운 공간과 그 안에서 낯설게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담담하게 그림 속에 담아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 화가의 눈으로 세상을 훔쳐보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는 특별한 눈으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측면을 캔버스에 담은 사람들이다. 김홍도나 호퍼 같은 화가는 새로운 도시공간과 그 속 인간의 삶의 단면을 잘 잡아낸 작가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새로운 공간이 나온다. 증기기관, 철근콘크리트, 엘리베이터, 자동차는 새로운 20세기의 도시를 만들었다. 새로운 공간이 나오면 그 공간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바뀐다. 사람의 관계가 바뀌면 인간에 대한 의미도 새로 찾아야 한다. 20세기는 기술이 만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 인간상을 찾아가는 시대였다. 호퍼의 눈을 통해서 낯선 공간에서 당황한,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적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챗GPT 같은 인공지능, 급격하게 변하는 이상기후, 급속하게 냉각되는 국제 정세에 당황하고 있다.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적응보다 변화가 더 빠르게 다가온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마치 20세기의 공간에 던져진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과 같은 처지다. 우리 시대의 김홍도는 우리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