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좌천된 적이 있다. 이어 장시(江西)의 외딴 지방에서 낮은 관직을 맡아 우울한 시절을 보낼 때다.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배웅하던 강가에서 그는 우연히 만난 퇴기(退妓)와 크게 교감한다.

수도 장안(長安)에서 잘나가던 기생이었으나 어느덧 그녀는 초라한 말년을 맞이했다. 백거이 또한 정쟁에 휘말려 좌천된 하위 벼슬아치 신세다. 둘의 상황을 백거이는 ‘비파행(琵琶行)’에서 “우리 모두 하늘가를 떠도는 나그네(同是天涯淪落人)”라고 적었다.

우리는 이 ‘윤락(淪落)’을 조금 이상하게 쓰지만 본래 새김은 곤경에 빠지거나 떠도는 상황을 지칭한다. 매우 불우해진 처지를 일컫는다. 인생의 버젓한 경로에서 벗어난 두 사람이 ‘떠도는 나그네’라는 말로 큰 공감을 이뤘다.

번화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를 우리는 주변(周邊)이라 적는다. 중국에는 황제가 있는 곳, 권력이 이어지는 장소로부터 멀리 벗어난 이 주변을 기피하는 심리가 발달했다. 그에 따라 성(城)의 안팎을 매우 차별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삶의 정처(定處)를 잃고 부평초처럼 떠도는 처지를 극도로 꺼린다. 물처럼 덧없이 떠도는 유랑(流浪)이 싫다. 전쟁과 재난으로 그런 신세에 놓인 사람을 유민(流民), 그런 경우를 유리(流離)나 유락(流落)으로 적는다. 위의 ‘윤락’이 그 맥락이다.

요즘 중국어 매체에서 유행하는 말은 ‘선 위를 걷다’는 뜻의 주선(走線)이다. 멕시코 등 남미에까지 가서 미국으로 입국을 시도하는 중국인들을 일컫는다. 국내에서 떠돌다 결국 해외로 도망을 가는 유망(流亡)의 대열이다.

중국이 살 만한 곳, 희망이 있는 땅이라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높아지는 실업률, 하강하는 경기 등으로 중국 민생이 위기에 서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경계선에 다가서는 중국인들 모습이 또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