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수의 책 ‘답지 않은 세계’를 읽다가 MZ세대에게 유행하는 것의 8할이 ‘꾸덕’하고 ‘녹진’한 것이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그의 말처럼 꾸덕이라는 말은 ‘꾸덕한 브라우니’나 ‘녹진히 치즈가 늘어나는 로제 떡볶이’ 같은 음식을 넘어 ‘꾸덕한 제형의 영양 크림’처럼 다양한 범위에서 쓰이고 있었다. ‘꾸덕’은 원료를 아끼지 않고 물 타지 않은 고급스러움을 풍기며 텅 빈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노년 내과 전문의 정희원의 인터뷰를 읽다가 MZ세대의 ‘꾸덕 유행’이 떠오른 건 ‘가속 노화’란 단어 때문이었다. 그는 불안정한 커리어나 주거 환경, 긴 출퇴근 시간, 가공식품의 잦은 노출 같은 사회적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가속 노화로 지금의 30·40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빨리 노쇠해지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꾸덕’하고 ‘녹진’한 것은 칼로리가 높고 자극적인 편이다. 하지만 통곡물, 채소, 미역처럼 영양가가 많은 음식들은 대개 ‘꾸덕’과는 정반대의 물성, 즉 수분이 많고 담백하다. 무엇보다 물성 때문에 여러 번 씹어야 해서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면 먹기 힘들다. 이처럼 꾸덕함에는 건강을 위협하는 그림자가 있다.

회사원 시절 구멍 난 내 마음을 메워주던 음식은 도넛이었다. 하지만 앉은 자리에서 열 개도 먹던 소소한 행복은 스트레스성 폭식과 위염으로 이어졌다. 쉽게 얻는 건 행복이라기보다 쾌락에 가깝고, 거기엔 부작용이 따른다. 스마트폰 중독과 야식 습관, 수면 박탈, 가속 노화는 연속 선상에 있다. 일면 다르게 보이는 ‘욜로’와 ‘조기 은퇴’ 역시 한 쌍으로 마음속 불안이 야기한 현상이다. 홍정수의 말처럼 일하는 엄마 대신 할머니 품에서 자란 MZ세대가 인절미나 군밤, 미숫가루 같은 ‘할머니 음식’에 빠지는 이유는 꾸덕한 그 음식들이 허기로 가득 찬 마음을 목구멍 끝까지 채워주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공허함과 가속 노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불안은 영혼만 잠식시키는 게 아니다. 가속 노화를 앞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