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을 하는 지인에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줘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중간에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줘요”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위로’와 ‘공감’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상담을 하면 답을 얻어야 한다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였다. 한두번의 상담으로 해답을 얻는 ‘매직’은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의 답은 이미 내담자 자신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상담의 출발은 경청이라고 했다.

특별히 똑똑하지도 않고, 말주변이나 유머, 경제력도 평범한데 유독 인기 있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는 늘 함께하자는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그는 참 잘 듣는 사람이었고 상대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잘 듣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매력자본을 축적한 것이다.

야마네 히로시의 책 ‘히어 hear’에는 “이야기를 듣는 목적은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공감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있다. 흥미롭게도 ‘듣다’를 뜻하는 영어 ‘hear’와 같은 발음인 ‘here’는 ‘여기’라는 뜻을 가진다. 누군가의 아픔을 ‘듣고’ 공감하려면 ‘여기’ 가까이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신통하기만 했다.

관계를 표현하는 재밌는 단어가 더 있다. 영어 ‘close’는 가깝거나 친밀함을 뜻하지만 또 다른 의미는 ‘문을 닫다’ ‘종료하다’라는 뜻도 있다. 잘 듣기 위해서는 가까이(close) 가야 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좋은 관계가 종료(close)되는 것이다. 상대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너무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 차가울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 유지가 좋은 관계의 핵심이다. 나이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말한다. 공자가 말한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귀가 순해진다는 건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자신에게 오는 말을 공감하고 경청하는 능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