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어린이 놀이터가 철거되었다. 그네는 단단히 줄로 묶여 고정되었고, 미끄럼틀과 정글짐은 새로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그러다 종내는 없어졌다. 학교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는데, 판자로 막아버리거나 성인 교육 센터로 쓰고 있다. 오디오 테이프와 레코드로만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만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못 견디게 괴로워 못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약을 하듯 아이들의 영상을 보면서 살아간다. - P. D. 제임스 ‘사람의 아이들’ 중에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한 학급 학생 수가 70~80명일 때가 있었다. 한 학년은 15학급 내외, 전교생이 수천 명이었다. 현재 지인의 아이가 다니는 지방 학교는 한 학년에 두세 학급, 한 반에 15명, 또 다른 지역 학교의 전교생은 겨우 아홉 명이다. 서울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 듯, 수십 년 역사를 가진 학교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1992년에 출간된 소설은 번식 능력을 잃어버린 인류의 미래를 그린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 어디에서도 아기는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왜 인류 전체가 불임이 되었는지, 원인도 치료법도 모른다. 세상은 종말을 향해 천천히 늙어간다.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낳는 아이는 0.78명, 이대로라면 30년 후 한국인 절반이 사라진다. 국가 소멸이 코앞이라며 출산 휴직, 육아 재택근무,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 등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책을 마련한다고 법석이다. 그러나 출산율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 지금 나도 힘든데?” 젊은 친구들은 말한다. 그른 걸 옳다고 가르치는 교육, 매번 바뀌는 입시 정책, 나날이 높아지는 취업과 내 집 마련의 벽, 치솟는 물가와 세금, 밑 빠진 독이 된 국민연금. 무엇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바보가 되는 나라.

저출산은 젊은 세대의 이기심 탓이 아니다. 자기 핏줄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 애착 때문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식’에게 그 무거운 짐을 떠넘기기 싫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믿음,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이 땅은 한국인 없는 한국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