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여행 중 책가방 무게로 힘들어하는 저학년 초등학생을 보았다. ‘란도셀 오픈런’ 기사를 읽다가 일본은 참 변하지 않는 나라구나 싶었다. 란도셀은 일본 초등학생들의 국민 가방으로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 초등학생도 이 가방을 메고 다녔다. 비싼 가격에 한눈에 봐도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기 때문에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가 많은데도 왜 저 가방을 수십 년째 고집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본 총리가 나서 ‘팩스 시스템 개혁’을 추진했지만 이메일은 팩스에 비해 보안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반발하는 공무원 사회 때문에 개혁이 난항 중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일본은 CD 플레이어가 장착된 노트북이 여전히 많이 팔리는 나라다. 100년이 된 우동 가게와 온천 여관, 카페도 많다. 오래된 가게에서 파는 커피나 우동 값 역시 크게 변함이 없는데, 이는 장기 침체로 30년째 오르지 않는 월급과 관련이 깊다.

일본으로 자주 여행을 가는 친구가 일본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20년 전에 우연히 갔던 라멘 집이 여전히 영업 중이고, 20년 후에도 계속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1년만 지나도 사라지는 가게가 즐비하고, 10년이면 아예 동네 지도가 바뀌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변함이 별로 없다고 했다.

일본의 한 대형 마트에서 직원이 물건에 세일 마크 붙이는 장면을 봤다. 처음 10퍼센트 할인 스티커가 붙은 초밥 가격은 사람들이 집어 들지 않자 30퍼센트에서 50퍼센트까지 내려갔다. 대부분의 신선 식품은 물론이고 즉석식품 전체에 덕지덕지 붙은 할인 스티커를 보며, 싸지 않으면 선뜻 사지 않는 일본인들의 실생활을 목격한 셈이다. 높은 월급보다 종신 고용이 주는 안정감을 선호하는 일본의 풍경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빠르게 변하는 대한민국 풍경과 느리게 고여 있는 일본의 풍경 속에서 50퍼센트 세일 스티커가 붙은 350엔짜리 초밥을 먹었다. 변해서 좋은 것과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것 사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