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도산서원의 문, 2009.

벽은 제한하고 문은 확장한다. 벽과 문은 하나다. 벽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짓고 문으로 드나드니, 사람이 만든 집이 사람의 발길과 눈길을 인도한다. 어떤 벽은 절대 넘을 수 없는 철벽처럼 차갑고, 어떤 담은 슬쩍 뛰어넘어도 될 것처럼 다정하다. 어떤 문은 늘 열려 있어서 평화롭고, 또 어떤 문은 벽보다 꽉 막혀서 남의 세상이다. 벽과 문으로 구획된 공간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동춘(63) 작가는 젊은 시절 생활 문화 전문지 사진기자로 일을 시작해서 전통적 또는 한국적이라 할 만한 소재, 장소,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진을 찍었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엮어왔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한옥, 차, 종가, 서원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전통문화에 관련된 대상에 천착하게 되면서 전통 가옥에 매료되어 경상북도 안동에 자리를 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문은 액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각형의 틀은 단단하게 반듯하고, 그 너머로 보이는 나무는 화면의 한 가운데에서 당당하게 아름답다. 안개 낀 날을 기다려 찍은 사진 속에서 어두운 틀을 더듬으면 세월을 입고 차분하게 자리 잡은 꽃잎 문양이 사랑스럽고, 색이 덜어내진 나무들의 형(形)은 힘차다. 오래전 한 그루였던 이 나무는 댐이 생기고 물이 들어와 땅을 돋우는 일을 겪으면서 두 그루로 나뉘었다. 나무들은 깊은 땅 속에서 뿌리로 끌어안고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오늘도 문 안을 지키고 있다.

사람이 만든 건축물을 볼 것이냐, 그 주위의 자연을 볼 것이냐는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이동춘 작가의 관점은 분명하다. 건축물과 자연을 중첩시켜서 문안으로 풍경을 빌려 들이는 것이다. 고택과 고궁들을 오래 보고 겪은 작가가 도산서원에서 퇴계 선생의 발걸음과 시선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지어진 집을 그렇게 즐길 수 있게 해주니, 그렇게 또 순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