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곳에서 높이가 다른 지점으로 걸음을 옮기는 데에는 계단이 놓인다. 대개는 한 발짝씩 디뎌 오르거나 내린다. 따라서 한 걸음으로 하나의 ‘맺음’을 이룬다. 그런 의미 맥락에서 생겨난 한자가 ‘제(除)’다.

글자는 본래 궁중의 계단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각 단(段)을 한 걸음씩 바꿔 딛는 계단 위 동작으로 인해 나중에 ‘바뀜’의 의미를 얻었다. 아울러 이전 것을 뒤로하고 새것을 디딘다고 해서 ‘없애다’는 새김도 획득했다고 본다.

이 흐름에서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가 제야(除夜)다. 한 해 마지막 밤을 일컫는 말이다. 가는 해와 오는 해의 교차점이 걸음 바뀌는 계단처럼 여겨져 나온 말이다. 중국에서는 보통 제석(除夕)이라고 잘 적는다.

제월(除月)이라고 하면 가는 해의 마지막 달, 즉 음력 12월을 일컫는다. ‘제야의 종’을 울리는 그 날은 당연히 제일(除日), 즉 섣달그믐이라고 부르는 한 해 마지막 하루다.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날이다.

옛 벼슬아치가 새 관직을 받을 때도 이 글자가 등장한다. 제수(除授)가 대표적이다. 임금이 옛 자리를 없애고[除] 새 자리를 주는[授] 사례를 일컫는다. 흔히 제배(除拜)라고도 적었다. 벼슬아치에게는 아무래도 경사에 해당한다.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은 흔히 ‘4칙(則) 계산’으로 부른다. 한자로는 가감승제(加減乘除)다. 때로 곱셈의 ‘승’은 보태고 늘어나는 상황, 나눗셈 ‘제’는 나누고 쪼개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래서 승제(乘除)라고 하면 곱셈과 나눗셈의 뜻 외에 성쇠(盛衰)의 의미도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사망자가 폭증한다. 뒤늦은 정책 전환으로 혼란이 더해지면서 중국은 마치 긴 내리막길에 놓인 계단 앞에 다시 선 형국이다. 중국인이 맞이하는 올해 섣달그믐밤, ‘제야’의 정경이 참 스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