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받은 새 우표가 흐릿해진 기억을 데려왔다. 크리스마스 실(seal). 어린 시절 이맘때면 학교에서 억지로 사야 했던 탓일까. 다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까먹었던 약속처럼 퍼뜩 ‘세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딸랑딸랑 자선냄비 종소리도 곳곳에서 울리고. 이렇게 2022년이 멀어져 가는구나.

가만, ‘멀어 가는구나’ 하면 안 될까? 저 첫 문장부터 더듬어보자. ‘흐릿해 간 기억’이라 하니 어색하다. 형용사 ‘흐릿하다’와 보조동사 ‘가다’가 맞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본동사와 연결되어 그 풀이를 보조하는 동사’라고 보조동사를 풀이한다. 앞에 오는 말이 동사여야 한다는 뜻. 한데 ‘흐릿하다’는 형용사라서 ‘흐릿해 간’ 하면 어법에 맞지 않을 수밖에. 역시 형용사인 ‘멀다’도 굳이 보조동사 ‘가다’를 쓰려면 동사로 만들어 ‘멀어져 가는’ 아니면 ‘멀어지는’ 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형용사도 매한가지. 왜 종아리가 가늘어 갈까, 깨끗해 가는 바닷물, 문제가 어려워 가니 초조해, 익을수록 맛있어 가는 김치…. 보조동사 ‘가다’와 짝지어 보니 죄다 어울리지 않는다. 반대로 ‘아이는 부모 닮아 가는데, 알아 갈수록 좋은 사람, 모두들 지쳐 간다, 저금통 채워 가는 맛이 쏠쏠’은 한결같이 자연스럽다. 앞에 동사가 왔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언어 현실에선 그럴싸한 쓰임새가 있다. ‘사랑할수록 깊어 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가요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깊어 가는 가을밤에 고향 그리워’(가곡 ‘고향 그리워’). 유달리 ‘가을(밤)’은 ‘깊어 가다’와 잘 어울려 입에 딱 붙는다. 하지만 앞서 짚은 보조동사의 조건을 무시할 수 없을진대, 극소수 예외로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한테 워낙 익숙해졌을 뿐 어법에는 어긋나는….

수은주가 내려갈수록 올라가는 것이 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의 ‘나눔 온도’ 말이다. 달아올라, 달아올라, 100도를 향해. 그 열기에 고단함도 서글픔도 싹 물러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