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뿌리는 “개가 짖어도 카라반은 전진한다”는 아랍 속담이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몬태규 노먼 영란은행 총재가 통화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 속담을 읊었다. 개 취급 받은 사람들은 흥분했고, 그 속담은 멀리 한국까지 전파되었다.

카라반은 인적이 드문 사막이나 초원에서 도적떼를 만날까봐 열차처럼 긴 행렬을 만들어 다녔다. 낙타나 말을 이용한 그들의 운송 방식은 해상 운송에 비해 효율성이 낮았다. 그래서 보석이나 향신료같이 무게 대비 가격이 비싼 품목만 취급했다. 귀중품을 운반하는 위험이 커서 한눈을 팔 수 없었다. 도중에 개가 아무리 짖어도 묵묵히 갈 길을 재촉했다.

카라반이 다니던 길은 엄청나게 광활하다. 북아프리카의 서쪽 끝 탕헤르에서 바그다드를 거쳐 북경에 이르기까지 이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그 단체 여행객들이 다니는 길목에 이슬람 제국은 국영호텔(caravanserai)을 세웠다. 그 숙소는 튼튼한 경호 시설과 넓은 창고, 그리고 편안한 침실과 외양간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오늘날의 대형 호텔이나 콘도미니엄처럼 체인을 이루면서 다음 목적지의 기후나 현지 물건 시세, 정치 상황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카라반의 혈통과 종교가 모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국영호텔은 모든 투숙객을 차별 없이 환대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상인이었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고, 중요했기 때문이다. 절정기의 이슬람 제국은 이민족과 타 문화에 대해서도 너그러웠다. 인두세만 내면 이교도들도 제국 안에서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었다.

지금의 이슬람은 타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작다. 그리고 변화를 거부한다. 이란 정부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체포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부르카로 온몸을 가리지 않는 여자를 길거리에서 채찍질한다. “똥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는 그 외곬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