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불과 30분 전, 그는 자신이 살던 고시원이 아니라 근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고시원은 목숨을 끊기에 충분치 않은 높이였던 것 같았다. 흔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그는 옥상에서 추락했다. 하지만 그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 울창한 가을 나무는 그의 몸을 정통으로 받아냈다. 중력 에너지는 크게 줄었고 바닥에 옆구리를 부딪힌 그는 갈비뼈 몇 개가 부서졌으나 온전하게 살았다. 둔탁한 소리를 들은 행인의 신고로 그는 여기까지 왔다.

“어디가 아픈가요?”

“옆구리가 아파요. 다른 덴 그냥, 괜찮아요.”

“왜 뛰어내리셨나요.”

“…사는 게 힘들어요.”

/일러스트=박상훈

그는 단답형으로 답했다.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고 저체온증이 있어 대화가 원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방면의 치료가 필요했다. 손상을 입은 육체와 극단적 시도를 결행한 마음 모두 치료받아야 했다. 우리는 입원을 위해 그의 삶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일단 현실적인 지불 문제가 있었다. 현재 주변에 보호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그가 얼마나 지불 의사가 있는지 알아야 했다. 돈과 관련된 문제는 인생의 일대기와 전부 연결된다.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체온이 오르고 술이 깨자 그는 조금씩 입을 열었다. 쉰 살을 막 넘긴 그에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는 떠난 지 오래였고 자녀는 생사도 알 수 없었다. 친구라고 부를 사람도 없었다. 휴대폰의 연락처는 부동산이나 수리소 같은 것이 전부였다. 일용직을 반복하다가 그만두고 고시원에 틀어박힌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유서를 쓰지 않은 것도 알릴 사람이 없어서였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낼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병원에선 너무 흔하게 마주해서, 누군가는 진부하다고 쉽게 말할 사연이었다. 우리는 난감함에 한숨을 쉬었다.

그의 상태가 안정되자 혹시 모를 손상을 파악하기 위해 전신 CT를 촬영했다. 곧 그가 기적적으로 생존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쪽 갈비뼈 골절과 간 좌상 외에는 모두 찰과상에 그쳤다. 다만 안면을 촬영한 CT에서 특별한 소견이 보였다. 왼쪽 안구의 선을 따라 석회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안구의 모양 또한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본디 움직일 수 없고 기능하지 않는 눈이었다. 그는 한쪽 눈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판독을 위해 그 모양을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근래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소견이었다. 저 병변은 선천적인 장애가 아니었다. 다치거나 염증이 생기거나 어떤 문제가 생긴 뒤 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 방치해야 저런 소견이 나타날 수 있다. 나는 병력 확인을 위해 재차 그에게 가서 물었다.

“왼쪽 눈이 안 보이시는 것 같은데요. 원래 안 보이셨어요?”

“20년 전쯤 눈이 침침하면서 안 보이더라고요. 그냥 나빠졌구나 하면서 살았는데 곧 완전히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이미 안 보이니까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서 안 갔습니다.”

내 생각은 맞았다. 하지만 문득 겁이 났다. 스무 해 전이면 고작 그의 나이 서른 살의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눈이 안 보이면 병원에 간다. 시력을 잃어버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너무 두려우니까. 당장 이 응급실에도 시력 저하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하지만 서른 살의 그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완벽히 눈이 멀었으며, 그 후로 스무 해를 ‘그냥’ 살았다. 그 ‘그냥’ 살아온 삶의 결과로 그는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나는 다시 CT상에서 모양 잃은 안구를 보았다. ‘진부’라는 단어를 취소하고 입에 담지 말아야 했다. 서른 살에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해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인생을 우리는 모른다. 확실히 죽기 위해 낯선 장소를 찾아가는 발걸음과 울창한 나무에 몸이 걸리는 그 감각 또한.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과 같다. 모든 인생은 하나의 세계다. 그 대부분을 우리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