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기차로 이동하는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자주 역방향으로 달려가는 좌석에 앉게 되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햇빛이 비치는 창가 자리를 배정받을 때였는데 여름 햇빛은 참 고역이었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감상하려던 계획은 틀어졌고, 이번 여행은 운 없이 늘 햇빛 쪽 창가에만 앉는다고 생각했다. 커튼을 치자 이내 기분도 어두워졌다. 그러다 며칠 후, 기차가 늘 직선으로만 달리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기차는 직선과 곡선 때로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 햇빛이 내리꽂던 창가는 어느새 그늘이 되었고, 반대편 창가는 햇빛이 번졌다. 문득 우리 삶도 달리는 기차의 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힘든 시간도 세월이 흐르면 어느새 사라진다. 우리를 둘러싼 조건이 늘 변하는 것처럼 삶은 직선보다는 울퉁불퉁한 곡선에 더 가깝다. 여름엔 햇빛이 고역이지만 겨울에는 오히려 고마운 존재다. 내가 앉은 자리에 그늘이 생기자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옆집 잔디가 더 푸르다”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공원의 잔디밭도 그렇다. 내가 있는 이곳보다 저 먼 곳이 늘 더 푸르게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촘촘히 푸르러 보이는 그곳도 이곳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남들은 다 행복하고 나만 불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들의 삶도 나와 다르지 않다. SNS는 ‘실제의 내’가 아닌 ‘되고 싶은 나’를 연출해 보여주는 무대일 때도 많기 때문이다. 삶은 간단치 않다. 사람은 때론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적는다.

문제는 자신만 불행하다고 믿는 마음이다. 자신이 앉은 자리를 굳이 타인의 것과 비교하지 말자. 구상의 시 ‘꽃자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