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미디어 효과 이론 중에는 100여 년 전 학계에 소개된 ‘탄환 이론(Bullet Theory)’이 있다. 언론의 메시지가 목표물을 맞추는 총알처럼 대중에게 즉각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30일 강원 강릉시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을 찾아 지지자와 당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탄환 이론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 중에는 우리 지지자가 더 많은데, 저학력·저소득층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 ‘월 소득 200만원 미만 10명 중 6명, 尹(윤석열) 뽑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며 ”(저소득층이) 자신에게 피해 끼치는 정당을 지지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정보를 왜곡·조작하는 일부 언론 책임이 크다”고 했다. 상당수 저소득층이 일부 언론의 왜곡 보도로 대선 때 윤 후보를 지지해서 자신이 졌다는 것이다. 대선 패배 책임을 자신과 민주당이 아니라 ‘언론 탓’ ‘남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대중의 판단력이 부족해서 언론 보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탄환 이론은 그동안 수많은 비판을 받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대선 직전 중앙선관위 여론조사를 봐도 저소득층이 후보를 선택할 때 주로 언론 보도에 의존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당시 조사에서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은 후보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언론 보도(38%)뿐만 아니라 TV 토론·방송 연설(31%), 인터넷·SNS(22%)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입수한다고 했다. 이들이 후보 정책 및 공약을 ‘알고 있다’는 응답도 86%로 월 소득 700만원 이상 최고 소득층(90%)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 의원은 저학력·저소득층 등 경제 약자의 민도(民度)를 우습게 봤다.

경제 약자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외면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소득 주도 성장, 최저 임금제, 부동산 수요 억제 등 ‘빗나간 정책’으로 빈부 격차를 키우고, 하층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이 문재인 정부 초반부터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낮았던 건 아니었다. 지난 정부 출범 직후 2017년 6월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생활 수준 상·중상층(44%)보다 중하·하층(47%)이 높았는데, 정권 말인 2022년 2월엔 상·중상층(42%)보다 중하·하층(36%)이 낮았다. 소득 상위층은 5년간 민주당 지지율이 비슷했지만 저소득층에선 1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지난 정부가 5년 동안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었는데도 이 의원은 ‘언론 때문에 불리하다’고 했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고용과 분배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의 분노가 반영된 결과였다. 이를 모르고 ‘언론 탓’을 한다면 개탄할 일이고, 알면서도 부자·서민 갈라치기로 선동한다면 양심을 버린 반지성 행위다.